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채, 영문을 알 수 없는 쾌감의 미진함으로 혼란스러
학문이라는 제목을 보고 뭔가 묵직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얼른 접을 필요가 있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이 초등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까지로 한창 학문을 연마하는 시기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작가의 취사선택에 의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학문과는 거리가 있다. 성에 대해 파격적인 입장 그리고 형식을 취하는 작가답게 소설에서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성장기 소년소녀의 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히토미는 쇠파이프 위를 어기적거려서 신타 옆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파이프에 문질러진 샅에서 미지근한 물이 스며 나온 것처럼 느낀 것은... 신타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뒤로 돌려 치마 속을 슬쩍 더듬어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자 방금 전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히토미가 우연히 접속하게 된 어떤 감정의 세계는 무의식의 영역 혹은 제어 가능하지 않은 본능의 영역에 가깝다. 그리고 그것은 히토미가 자신의 삶에서 최초로 성의 영역에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이렇게 스스럼없이 성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주인공을 묘사한다. 그리고 히토미의 주변에 식욕의 화신인 무료와 수면욕에 항상 무릎 꿇고 마는 치호를 배치함으로써 성욕과 식욕과 수면욕이라는 본능의 삼박자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러한 본능의 영역만 있는 것은 아니니 작가는 이들 세 사람의 리더 역할을 하는, 또래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알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이성적인 인물 신타를 배치함으로써 본능과 이성을 적절히 배합한다. 본능과 이성의 적절한 하모니는 성과 우정이라는 주제를 거치면서 무난한 성장 소설로서의 면모를 갖춰 가는 것이니 작가의 영리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녀는 벌써 오랫동안 신타에게 부정한 마음을 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은밀히 즐기고 있습니다. 우정이니 뭐니 하는 촌스럽고 딱딱한 말로 방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구라는 흔해빠진 역할을 부여받기에 신타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맨 앞에는 (사실 소설은 주요한 4명의 인물과 조연 1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장에서는 두 명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인물들의 부고 기사가 실려 있다. 그러니까 독자들이 읽게 되는 것은 이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일찍 성에 눈을 뜬 히토미는 68세에 심근경색으로 죽게 될 것이고, 식욕의 화신인 무료는 102세에 찹쌀떡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죽고, 어린시질부터 무료와 결혼하겠다고 공언한 모토코는 실제로 무료와 결혼을 하였으며 81세에 벽장 정리 중 상자가 쏟아지는 바람에 죽고, 수면욕으로 졸기 일쑤였던 치호는 18살에 미루마 강에서 익사하며, 이들의 리더 격이었던 신타는 36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읽게 되는 것이다.
성장소설이기는 하지만 그 소재나 형식에서 여타의 성장소설과 조금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잘 쓰여진 작품으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어린 시절의 이런저런 욕망들과 그들의 죽음에 대한 부고 사이의 연관성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삶의 본능으로서의 Eros 성애와 죽음의 본능으로서의 Tanatos 죽음을 영리하게 배치시키고는 있지만), 성욕을 제외한다면 다른 욕구들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런저런 욕망에 대해 배우고 익히며 자라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잘 읽히기는 하지만 성인 독자를 위한 깊이의 배려가 없으니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다 발만 적시고 만 꼴이다.
야마다 에이미 / 이규원 역 / 학문 (學問) / 322쪽 / 2010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