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앙상한 잎맥만으로 투명하게 바라보는, 우리들 일상의 비켜갈 수 없는
소설가 하성란이 ‘지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비평가 수전 손택이 ‘독서의 강렬한 즐거움을 아는 독자에게 특히 어울리는 작가’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때 설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는 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그리고 아마도 이 작가와 영화 작업을 함께 하였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전하는 설터의 이 말이야말로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근사한 (혹은 근사치에 가까운) 말이라고 보여진다. 이 작가의 소설은 정말 뼈대만 남아 있는 잎을 연상시킨다.
「혜성」.
필립과 아델... 이들 부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식탁에서는 7년 동안 바람을 피웠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된다. 필립은 불편하고 아델은 멈추지 않는다. 필립은 혜성을 보고 싶어 하고, 아델은 관심이 없다. 아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엌의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다.
「스타의 눈」.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테디는 스타인 데보라와 식사를 할 작정이다. 하지만 데보라는 자신을 데리러 온 켁과 함께 테디를 따돌린다. 켁은 그 여자 데보라와 식사를 하지만 편하지 않다. 테디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나의 주인, 당신」.
아디스는 망가져버린 시인 브레넌을 딤스의 집에서 만났다. 브레넌은 아디스의 가슴을 움켜쥐었고 브레넌은 쫓겨났다. 그리고 다음날, 브레넌의 집 근처에서 발견한 개는 아디스를 쫓아 남편과 함께 있는 그녀의 집까지 온다. 갑작스럽게 그녀의 인생에 침입한 브레넌 혹은 그의 개, 그녀 아디스와 남편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뉴욕의 밤」.
레슬리와 카트린과 제인... 그녀들은 자신들의 남자에 대해, 그들과 함께 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렇지 않게 이들 세 친구는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헤어진다. 그리고 먼저 일어선 제인은 택시르 타고 가는 중에 울음을 터뜨린다. 그녀 제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포기」.
서른 한 살 생일을 맞은 아내 안나의 생일날... 서로에게 거슬리는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안나와 빌리 부부는 ‘포기’라는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서로에게 잘 맞추어왔다고 여기는 빌리를 향하여 그날 밤 안나가 말한다. “데스와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시인인 ‘그’ 데스와의 관계에 대해 안나는 경고한다.
「귀고리」.
모든 것은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어떻게 이런 여자가 내게, 라고 여겨지는 애인까지 있다. 하지만 아내의 귀고리를 애인이 빌려가는 그 순간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플라자 호텔」.
노린과 아서...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였고 노린은 아서와 함께 살 생각까지 하였지만 아서는 망설였고 노린은 떠났으며 곧 결혼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 노린이 다시 아서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아서는 망설이고 약혼자가 있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길 위에서 눈물을 터뜨릴 것이면서도...
「방콕」.
홀리스와 캐럴.. 홀리스는 어느 날 캐럴이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본 이후 그녀와 헤어졌다. 그런 캐럴이 다시 나타나서 이제 자신의 여자 친구와 셋이서 방콕에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삶과 사는 척하는 것’ 중에서 삶을 선택했다는 캐럴, 홀리스에게도 사는 척하는 것 말고 삶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듯한 캐럴... 하지만 홀리스는 사는 척, 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도통 모를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도통 모를 이야기...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꼬인 인생을 살아야 했던 군인 뉴웰이 자신에게 충고를 하러 들렀던 웨스터벨트,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히게 된 훌륭한 군인 웨스터벨트의 장례식을 참관하는 이야기...
「어젯밤」.
지지부진하고 이해하기 힘들며, 건조하기 이를 데 없고, 싱겁게 시작되고 끝이 나는 지금까지의 소설들을 꾹 참고 읽으며, 이 마지막 소설에 이르게 된 것에 감사한다. 정말 다행이다. 중간에 멈췄다면 이 소설을 읽지 못했을 것 아닌가. 월터와 마리트 부부, 그리고 수잔나... 병에 걸린 마리트는 이제 마지막 만찬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 수잔나를 참석시킨다. 만찬이 끝나고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월터는 마리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주사바늘을 꽂는다. 그리고 이제 장애물이 사라진 세상의 첫날, 월터는 수잔나와 함께 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혼잣말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마리트라니... 이 한 편의 소설이 많은 걸 용서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칭찬을 듣는 미국 작가이다. 떠오르는 가장 비슷한 작가로는 레이몬드 카버를 들 수 있겠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은 단편 소설을 써낸다는 점, 일상의 자잘한 소품들을 아무것도 아닌 양 스리슬쩍 소설에 늘어 놓음으로써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는 점,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대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에둘러가지 않고 우리들 내면을 향하여 무조건 직구를 던진다는 점, 그래서 어어 하는 사이에 피하지 못하고 스스로와 직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점 등에서 많이 비슷하다.
제임스 설터 / 박상미 / 어젯밤 (Last Night) / 212쪽 / 2010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