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로 가득한 소년을 이사카 고타로 식의 좌충우돌로 징계하라...
혹시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싶게 엄청난 양의 소설을 쓰고 있는 듯하다. 재미로만 치자면 언제나 평범한 수준 이상을 주고 있지만, 의미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때때로 스스로를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작품이 딱 그러하다. 어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악의로 가득한 중학생 소년과 그를 둘러싼 좌충우돌이라는 그의 작품 어디에선가 한 번쯤 보았음직한 장면들이 난무한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 일어난다.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 일어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 번 일어난 일은 네 번 일어난다는 뜻이므로 한 번 일어난 일은 영원히 일어난다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하고 나나오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해도 작가의 캐릭터 창조 능력은 언제나 비범하다. 이번 소설 또한 그 얼키고 설켜 들어가는 자잘한 사건들만큼이나 독자를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은 철저하게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나나오(혹은 무당벌레)라는 캐릭터와 그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악의에 가득차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행운이 따라주는 중학생 소년 왕자라는 캐릭터 사이의 간극에 기인한다.
“세상에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옳은지 어떤지는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이것이 올바른 거다’라고 믿게 만드는 사람이 제일 센 거지.”
두 사람의 직접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자꾸 이 두 캐릭터가 독자인 나의 회로 안에서는 자꾸 얽힌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불운과 행운의 대결이다. 그러함에도 그것은 직접적인 대결이 아니라 간접적인 대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실질적인 대결은 자신의 아들을 왕자에게 거의 잃게 된 기무라와 그러한 기무라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왕자 사이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에 조종당하는 게 재밌어. 자기 변호나 정당화의 덫에 걸려들고,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 내가 그런 조종을 할 수 있다면 최고지...”
여기에 레몬과 밀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며 끊임업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또는 등장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사건을 물어 나르고, 해소되려고 하는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하는 조연들의 캐릭터도 등장하다. 코믹한 킬러 만화의 주인공들에 가까운 이들 2인조 킬러는 신칸센이라는 소설의 배경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리고 만화에 가까운 소설을 더욱 만화로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끊임없이 아동 만화인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를 두고 투닥거린다.
“엉성하고 기차랑 토마스를 심하게 좋아하는 쪽이 레몬이고, 진지하고 소설 같은 걸 즐겨 읽는 쪽이 밀감이야. 전형적인 B형 스타일과 A형 스타일이지, 부부였으면 벌써 이혼했을걸.”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마지막 순간 갑자기 툭 튀어나온 또다른 캐릭터를 통하여 한순간에 제압이 되니 일종의 명랑한 범죄 소설이라고 봐야 하겠다. 일본의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장르이자, 이사카 고타로가 특기를 발휘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얼커고 설킨 모양새가 조밀하여 수월하게 읽히기는 하지만, 마치 작가 자신이 미리 만들어놓은 소설 창작 프로그램을 통하여 완성한 듯하니, 조미료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 혹은 천편일률의 맛을 가진 패스트 푸드를 먹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사카 고타로 (이사카 코타로) / 이영미 역 / 마리아비틀 : 킬러들의 광시곡 (マリアビ-トル) / 21세기북스 / 595쪽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