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양영희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아버지와의 불화는 상상을 초월한 것, 그 화해까지도...

  *2011년 11월 2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시작했다. 두 달이 되어 간다. 투석실이 있는 십팔 층의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차례가 되면 침대로 이동하고 자리에 눕는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세 시간 반의 투석이 끝나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다시 병원 대기실에 기다렸다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 다음 다시 일터로 향한다. 십팔 층의 대기실은 해가 잘 들고, 간호사들은 모두 선하고, 나는 틈틈이 책을 읽는다.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 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P.31)


  아버지는 삼 년 전에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칠십대의 마지막 생일을 몇 달 남겨 놓은 때였다. 육신의 외곽에는 아무런 징후가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와 동행하여 세 개의 병원을 들락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여든 셋이 된 올해까지 별다른 악화 없이 버텼지만 아버지의 육체와 정신은 코로나를 앓은 4월 이후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갑작스러운 인지 저하, 신장 기능의 급격한 쇠락, 폐암과는 또다른 발원지의 희귀암 발병이 몇 달 사이 한꺼번에 아버지를 습격했다. 


  “지금에 와서야 짐을 싸던 어머니의 미소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 눈엔느 일본에서 온 상자와 봉투를 열어보고 기뻐할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오직 그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볼 수 없는 가족의 웃는 얼굴을 매일매일 따올리면서, 그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다음번 소포에 무얼 담을지 궁리했을 것이다. 만나지 못하는 씁쓸함을 상상으로 메우고 있었을 것이다...” (P.43)


  나는 아버지와 평생 불화한 사이다. 아버지 앞에서 아니오, 라고 해본 적이 없어 아버지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너무 분명히 그렇다. 아버지는 보안사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했고, 전두환의 군사 반란 시기에 현역이었다. 아버지는 폐암 발병 이후에도 극우 유튜버의 동영상을 끼고 살았다. 아버지의 동영상 시청에 진절머리내는 엄마에게 내버려 두시라고 했다. 그 증오의 힘이라도 빌어서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덧붙였다.


  『나는 옥류관에서 열린 잔치를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채플린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p.87)


  아버지는 이제 천진난만한 이가 되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불화하였던 남동생은 이 편이 나은 것 같다고 한다. 투석이 끝난 아버지를 집에 모셔놓고 돌아서는 나를 현관까지 따라온 아버지는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자식인데 뭘 그렇게까지 매번 현관까지 배웅을 하냐고 타박하는 어머니를 향해 역정을 내기도 한다. 자식이라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 아니냐고. 아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pp.175~176) 


  저자 양영희는 조총련의 고위층 간부를 부모로 두었다. 그리고 그 부모는 북송 사업에 따라 저자의 세 명의 오빠를(중학생이던 막내를 포함하여) 모두 북으로 보냈다. 저자는 북쪽에 있는 오빠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주인공으로 삼아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저자의 아버지와의 불화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그것이 다큐멘터리에 담겼을 것이다, 어떤 화해까지도. 



양영희 / 인예니 역 /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 마음산책 / 215쪽 / 2022 (2022)

매거진의 이전글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