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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6. 2024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문화 유산을 향유하는 여정은 새로운 문화 유산을 잉태하는 여정이기도 하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 두 번째 권이다. 1993년 첫 번째 책을 내고 일 년여만에 두 번째 책을 펴냈으니 참으로 바지런하다. 이번 책에서는 지리산 동남쪽의 함양과 산청, 아우리자강이 있는 평창과 정선, 토함산 석불사, 철원 민통선 부근, 청도 운문사 주변, 부안 변산, 고부 녹두장군 생가를 답사의 장소로 삼고 있다. 첫 번째 책에 서 (물론 작가가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보는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이야기는 기본으로 깔려 있지만) 답사기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였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유물의 답사와 함께 우리의 사회문화를 바라보며 품고 있는 작가의 생각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 전세계에서 문명국으로 자처하는 나라를 보면 모두 중세봉건국가에서 근대시민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봉건시대의 세련된 고급문화를 근대의 시민문화로 계승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근대화가정에서 그 중요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세련된 사대부문화가 근대적·시민적·대중적 지평에서 확대·개편·수정되는 계기를 갖지 못했고, 봉건사회 해체기에 일어났던 서민문화의 새로운 생명력을 발전시키는 노력도 해보지 못했다...”


  답사를 하면서 보게 되는 과거의 어떤 생활 양태 뿐만 아니라 작가는 현재의 우리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도 종종 귀를 기울인다. 그러니 관광버스나 유적지에서 몸을 흔드는 촌부의 문화를 저질스럽다며 깔아 뭉개는 대신, 그들의 노곤한 일상을 위무하며 그러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문화의 단절의 역사를 조근조근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 아리랑이 형성된 것은 본디 논노래·들노래·베틀노래·뗏목노래 등 민초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던 노동요가 1865년 경복궁 중수 때 팔도에서 모여든 부역꾼들이 각지의 일노래를 주고받는 가운데 아리랑의 보편성과 지역성이 동시에 확보도고 일의 노래가 사회화·현실화되며 한편으로는 놀이노래로 확대해갔다는 것이 고정옥의 『조선민요연구』(수선사 1949) 이래로 정설이 되었다.”


  이와 함께 눈에 보이는 유물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유물에 대해서도 진한 애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정선의 아우라지강을 따라 답사를 하는 동안 그곳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에도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아리랑이라는 우리의 민요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들여다보고, 그 기원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여준다.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엄숙하다고 말하기엔 온화하고, 인자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엄햇다. 젊다고 생각하려니 너무 의젓하고 노숙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탄력이었다. 남성으로 보려 하니 풍염하고 여성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건장하였다...”


  특히 이번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에 대해서이다. (무르팍도사에 출연하였던 당시에도 이 석굴암 본존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풀어놨던 것이 기억난다) 석굴암의 유래는 물론, 석굴암에 대해 평가하거나 연구하였던 이들의 기록을 점검하고, 석굴암을 몇 차례 수리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우리가 깨닫게 된 선조들의 우수성 (그 후손들의 아둔하거나 오만한 판단) 에 대해서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수렁보다 더 지저분한 20세기 우리 문화도 꽃이 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네 삶 속에는 온갖 찌꺼기가 다 있다. 봉건 잔재, 식민지 잔재, 군사문화 잔재, 만신창이가 된 동서문제, 남북문제, 제국주의 소비문화 찌꺼기, 온갖 쓰레기의 잡하장 같은 곳이다. 그래서 때로는 20세기 한국의 문화도 꽃이 필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당당히 말한다. 연꽃을 보라고. 우리에게는 갑오농민전쟁에서 3·1 운동, 독립군항쟁, 4·19혁명, 6월혁명으로 이어지는 생명수가 흐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기어이 피어날 것이라고.”


  작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그것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현재의 우리들이 또한 생산해내야 하는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지저분한 수렁이어야 더욱 징하게 꽃을 피우는, 하지만 동시에 그 수렁에 작으나마 깨끗한 물이 흘러들어야 더욱 징하게 꽃을 피우는 연꽃에 빗대어, 우리가 피워내야 할 현재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희망으로 이어진다.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 창비 / 446쪽 / 2011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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