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현재까지, 국내에서 국외까지 두루 섭렵하는 글쟁이의 음식 기행.
잊지 못하는 음식들이 많다. 아주 오래전의 것으로는 어머님이 따듯한 밥에 계란 노른자와 흰자 약간을 섞어 비벼주시던 간장 비빕밥이 있다. 기억조차 희미한 어린 시절 크게 앓아 누웠던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도록 만든 것이 바로 그 간장 비빔밥이었다, 라고 나는 기억한다.
성석제의 이번 산문집의 1부에 실려 있는 글들은 바로 이처럼 나의 어린 시절 간장 비빔밥과 같은 음식들에 헌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알아 주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의 어떠한 기억과 맞물려 있어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음식과 맛,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시골밥상 같은 글들이다. 그런가 하면 2부는 독일을 비롯하여 여행을 하는 중에 맛본 음식과 술들에 대한 글이고, 3부는 음식 자체에 대한 소론들이다.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지만 1부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옴직한 분량이다. (1부가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2부는 또는 그 나머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왜 이런 나뉨이 이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 청어 같은 등푸른생선이 등이 푸르고 배가 은빛이 된 건 위에서 새가 볼 때 바닷물과 구별이 되지 않게 하고 아래의 포식자가 올려다볼 때는 수면의 색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고 한다...”
읽다보면 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상식들이 중간중간 튀어 나오는데 그것을 읽는 재미도 괜찮다. 등푸른생선의 등이 푸른 이유나 우리들이 흔하게 먹는 김이 김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와 같이 (그러니까 김을 처음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였던 17세기 조선 현종 시절, 전라도 광양 사람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라, 그렇단 말이지, 싶은 내용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 문사라면 아침부터 책을 읽고 문장을 가다듬기 시작할 터인데 내가 겪어본 바로는 아침에는 시가 나오기 어렵다. 곧 아침과 낮은 산문의 시간이고 노을이 지고 난 이후의 저녁시간은 시신詩神 과 주신酒神이 공동으로 관장한다...”
드물게 소설가인 자신의 본업이나 글 쓰는 작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곁가지에 불과하며 오히려 성석제의 주특기인 웃기고 자빠질 지경인 문체, 그리고 그 문체를 적절하게 뒷받침해주는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사건사고 등이 즐비하다. 그러니 선생님을 통하여 처음 홍어찜과 마주친 순간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저절로 웃음을 흘리게 된다.
“... 홍어찜을 먹었다. 한 점만 먹어도 입속이 훌렁 벗겨지게 강한 것도 아니고 서울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약하게 삭힌 것이라는데도 코끝이 아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소주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실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지나면 목구멍에 누가 향기 나는 부채로 바람을 살살 불어넣는 듯 청량한 향긋함이 느껴져서 이건 또 뭔 조화인가 싶어 다시 한 점을 입에 넣게 되었다. 그러고선 놀라 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몇 병을 마셨는지 셀 수도 없었다...”
책의 뒷부분으로 넘어가면 작가의 술에 대한 (막걸리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술 이력은 책의 앞부분에서 이미 등장하지만) 작가의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올해 초던가 그 가게의 모든 술과 안주 전메뉴를 (그러니까 술과 안주를 포함해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은 물론 메뉴에 포함되지 않은 식당 사장의 특별 메뉴까지 모든 메뉴를...) 그날 저녁 나절동안 모두 섭렵한 바 있는 마포의 <신동이박사막걸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왠지 경험을 공유하는 것 같아 즐거웠다고나... 더불어 아마도 나름 술꾼이라고 보여지는 성석제가 전하는 아래와 같은 문구는 이제 완전히 맛이 가버린 과거의 술꾼인 나 같은 사람이 간혹 써먹어도 좋을 것 같다.
“술꾼은 다음 날 아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서 전날의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걸 묻지 않는다. 그게 예의다.”
성석제 /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 문학동네 / 353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