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신야 《인생의 낮잠》

온정 가득한 작가가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

by 우주에부는바람

“... 고양이는 본디 넘쳐 나는 인간의 생활 냄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동네 바보 같은 동물이며, 고양이가 많다는 것은 동네 바보를 거둘 만큼 마을에 활기가 넘쳐 난다는 얘기이자 주민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지와라 신야가 국내외를 두루 돌아다니며 겪은 여행 동안의 이야기를 엮은 산문집이다. 잡지에 연재한 것을 다시 모아 놓은 것인데,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자연 (혹은 자연과 흡사한 사람) 에 대한 애정의 내용이 자주 나온다. 그런 가운데 몇 차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양이와 인간의 공생을 바라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한탄하는) 작가의 나름 착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 필연적으로 학교 성적은 엄청나게 나빴다. 반에서 대체로 끝에서 두 번째 정도였다. 기왕 이리된 거 어중간한 위치가 아니라 꼴찌가 되려 했지만, 천재적으로 멀가 나쁜 오소리 같은 눈을 한 아이가 있어서 끝내 그 녀석을 이기지 못했다.”


대체로 진중하지만 군데군데 유머를 빠뜨리지 않는다. 대나무 낚시에 흠뻑 빠져서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위와 같이 말할 때에는 장난기 가득한 작가를 상상해볼 수 있다. 딱히 일관된 주제 의식을 갖거나 하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대체로 온정이 깃들이 있으니 이러한 유머가 때때로 등장하고 있으니 자칫 지루해지려는 독서를 막아 주는 것도 같다.


“... 고양이는 개와 비교해서 경계심이 강한 동물이다. 어지러운 공간을 좋아하는 것도 숨을 장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때가 되면 갑자기 모습을 숨기고, 절대 자신의 시체를 보여 주지 않는 것도 이 경계심이 만들어 낸 현상이라 본다. 몸이 쇠약해지면 적에게 잡히기 쉽다. 그래서 아무도 못 찾을 장소에 몸을 숨기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 간다.”


읽다 보면 고개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도 있다. 나 또한 길고양이들이 몇 개월을 못 채우고 죽는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죽는 것일까 의구심을 품어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보는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비록 비쩍 말라 있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죽은 길고양이들은 어디에, 하는 식의 의구심이 위의 내용을 통해서 해결되는 식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 혹은 식물에 이르기까지, 생물들은 모두 에고이즘에 의지하여 살아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가 없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지만, 그런 건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다. 생물의 관계성이 존재하는 한, 완벽하게 대가 없는 헌신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대놓고 죽음을 직시하는 사진을 찍는다거나 옴진리교 등에 휩쓸리는 젊은 세대들과 전체적인 사회의 흐름을 바라보며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작가이니 마냥 온정적인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가지는 에고이즘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위의 문장이 끝나고 나면 자신이 돌보았던 (물론 후지와라 신야 자신은 애초에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무심한 듯 말하지만) 고양이의 체취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니, 어쩔 수 없이 작가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이타적이고 온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 / 장은선 역 / 인생의 낮잠 : 사진, 여행, 삶의 또 다른 시선 (藤原惡魔) / 다반 / 288쪽 / 20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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