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뼈처럼 나를 내주어도 좋을 그 무엇, 우리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참신하고 파격적이며 화려하고 이지적이며 요란한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고 고백한다.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내 삶의 가장 작은 단위로 나뉜 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추구하였다고도 고백한다. 더불어 아직도 이러한 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 또한 고백한다. 그렇지만 이제 가끔은 이렇게 담백한 글에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거대한 수사가 없는 밋밋한 글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는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 성장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를 경외한다는 것은 생명의 근본적인 사유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순수함으로 회귀할 수 있다. 많은 대중예술가들이 늘그막에 일어나는 지각변동식의 변화의 비밀이 여기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중국 작가인 쟈핑와의 글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 대한 글을 엮은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은 친구라고 되어 있지만 가족 또한 산문집의 중요한 구성으로 존재한다. 그를 키워준 작은 어머니에 대한 글을 비롯해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글이 여기저기에 잘 배치되어 있다. 선생님이었으나 문화혁명 당시 고초를 당하고 이제 늙은 아버지가 글쓰는 아들을 향하여 던지는 말은 (늙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느끼는 감정으로 간혹 당황스러운 나로서는) 그냥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핑아! 넌 지금 일해야 할 시기다. 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농부는 바람이 불 때 넉가래질을 해야만 삽질을 더 많이 할 수 있단다. 듣자하니 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더구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아비가 내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아비는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향하여 품는 작가의 감정 또한 솔직하여서, 가벼운 문장 속에서도 쉽게 그 애정을 읽어낼 수가 있다. 어린 조카를 양육함에 있어서 오냐오냐 하기만 하는 어머님이 못마땅하여, 이제 세상사를 조금 알게 되었다며 까불듯이 대드는 나에게 던지는 어머님의 한 마디에는, 자식된 이의 식견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경외의 장벽이 담겨져 있다.
“나와 여동생이 어머니가 애 버릇을 잘못 들이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더니, 어머니는 ‘난 교육이 뭔지 잘 모르지만, 너희들은 어째서 지금도 영민하고 용감하니?’하고 되물으셨다. 어쨌든 우리는 어머니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물론 작가가 이와 같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욱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은 바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에는 작가가 알고 지낸 수없이 많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거나 붓글씨를 쓰는 이들 친구들과 작가의 교류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이 그득하다 못해 흘러넘친다. 끊임없이 친구를 만나고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주면서 형성된 이 수많은 관계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누구는 내가 친구를 잘 사귀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내 시간의 대부분을 친한 친구들이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항상 나는 밥상에 놓인 생선요리와 같다는 느낌이다. 이 사람도 와서 한 점, 저 사람도 와서 한 점씩 발라먹어 결국 뼈밖에 남지 않은 그런 생선 말이다.”
자신을 한 토막 생선에 비유하고 있지만 작가는 그 생선 노릇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기색이다. 자살한 대만 작가와의 뒤늦게 이어진 교류, 자신이 글을 쓰는 동안 집필실을 내어준 친구 부부의 푸근함, 이름 없는 지방 작가이거나 그저 아마추어 서예가인 친구들이 보여주는 괄목할만한 성취 등이 바로 유명작가인 쟈핑와의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스로 고독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고독하지 않다. 고독감은 냉대를 받거나 유기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지기가 없을 때 혹은 이해받지 못할 때 생긴다. 정말 고독한 사람은 고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끔씩 비명을 지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야수를 보았을 때처럼.”
책을 읽다보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도 내 주변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손만 뻗으면 그 자리에 있을 법한 그들이지만 제대로 손 뻗은 것이 언제였는지 가늠되지 않는다. 사실 얼마 남지 않은 2011년, 나는 간혹 비명 지르고 싶을만큼 외로웠다. 책을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쟈핑와 / 김윤진 역 / 친구 (朋友) / 이레 / 447쪽 / 2008, 2009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