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향한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수용을 경계하고자 하는...
“... 미국의 역사가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가 말한 대로, 역사는 후사경(後寫鏡)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후사경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도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길 위에 다른 누가 있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번역 출간되면서 바뀐 책 제목인 <역사 사용설명서>는 아무래도 너무 얌전한 것으로보인다. 원제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용하고 더 나아가 오용하고 악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게임인가를 우리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역사 사용설명서>라는 애매하고 미지근한 제목으로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역사는 우리가 현명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역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넌지시 알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선명한 청사진 따위는 역사 속에 없다. 각각의 역사적 사건은 여러 요인, 사람, 연대(年代)가 얽히고설킨 유일무이한 집합체이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하기로 결심한 것들을 정당화하려고 과거의 근거를 입맛대로 취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저자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말끝마다 역사가 우리를 선도한다, 라거나 역사가 우리를 판단할 것이다, 라고 덧붙이는 것을 들으면서 이 책을 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러니까 이라크 침공과 같은) 자꾸만 과거의 역사를 거론함으로써 스스로를 기만하고, 그러한 기만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조지 부시가 이 책을 쓰도록 저자를 부추긴 셈이다.
“왜곡된 역사나 은폐된 증거보다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짜 역사다. 간혹 그것은 수난을 많이 당한 사람들과 깊은 무력감과 굴욕감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저자는 보스니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의 국가들,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서 자행되었거나 현재도 자행되고 있는 역사의 오용 사례들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부정직한 사례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덧입힘으로써 우리가 역사를 사용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보다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 미국의 역사가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가 말한 대로, 역사는 후사경(後寫鏡)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후사경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도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사는 우리가 어디서 왔고 길 위에 다른 누가 있는지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들은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물려받아 이미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이룬다, 라는 카를 마르크스의 말이 아니어도 우리들은 이미 존재하는 역사 속에서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언제든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들여다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현재를 위하여 역사를 마음대로 바꿔 쓰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잘못된 후사경 속의 사실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교통 사고에 직면하고, 그로 인해 역사의 진행은 지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거릿 맥밀런 / 권민 역 / 역사 사용설명서 :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Dangerous Games : 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 / 공존 / 288쪽 / 2009, 2011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