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의 참으로 쓸모없는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성실하기 그지 없는 농담을 편애하는 편이다. <펭귄 뉴스>나 <악기들의 도서관>과 같은 단편에서 특히 그의 이러한 장점은 부각된다. 아쉽게도 그의 장편소설인 <좀비들>이나 <미스터 모노레일>에서는 이러한 장점의 화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인데, 그렇다고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농담이 적절히 조합된) 문학적 무기의 장점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밝히고 싶다.
“시간은 늘 우리를 쪽팔리게 한다. 우리는 자라지만, 기록은 남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기록은 정지하기 때문이다. 자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쪽팔림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장편보다는 중단편에서 장기를 발휘하는 작가이니, 짧은 산문에서는 오죽하랴 싶어서 집어든 책인데 나쁘지 않다. 묵직하게 삶의 희노애락을 밝힐 생각 같은 건 아예 없고, 그저 작가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활짝 펼쳐 놓은 짧은 글들이 (더불어 농담 가득한 카툰 약간) 가득하다. 쪽팔림 따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오히려 바로 그 쪽팔림을 자양분 삼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자라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글이다 보니 막힌 곳 없이 시원스럽다.
특히 작가의 발명 욕구와 카툰이 만나는 몇몇 페이지들 앞에서는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킥킥거릴 수밖에 없다. ‘블루트스내맘대로문구티셔츠’라는 작가가 상상하는 티셔츠는 회식 후 지하철을 타는 경우 “저에겐 사정이있어요. 술을 별로 마시지 못하는 저에게 사장님은 술을 자꾸만 권하세요. 냄새 나서 죄송해요. 곧 내릴테니 조금만... SORRY......” 와 같은 문장으로 티셔츠의 문구를 바꿀 수 있다는데, 이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만들어지면 분명 사고 싶어 질 것 같다) 들여다보는 일이 무척 흥겹기 때문이다.
“...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산문집의 곳곳에 작가의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작가로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나름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의 영역을 잘 포지션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괜스레 무게를 잡는 대신, 그는 자신의 비루하였던 청춘을 슬그머니 내비치면서 어쨌든 버티다 보니 이렇게 뭐라도 된 것 같다, 라고 넌지시 이야기하는 식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에 발견했던 온전한 기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료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 온전한 기쁨을 충전해두지 않는다면 길고 긴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어떤 일에서건 온전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작가와 비슷하게 늙어간다는 공통점 또한 가지고 있는 독자이다보니 이곳저곳에서 수긍할 지점들이 생긴다. 그 통에 이제 포기할까 싶었던 철없는 아저씨 캐릭터를,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다시 끄집어내게 되었다. 늙는 것이 두려워 늙어 가는 것을 수긍하기로 하였지만, 늙는 것을 인정하되 ‘온전한 기쁨’을 발견하는 일 또한 멈추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결국 이러한 다짐을 잊지 않고 열심히 늙어 가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싶다...
김중혁 / 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 마음산책 / 352쪽 / 2011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