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골짜기에서 도심의 우리를 위로하는, 가진 것 없는 자의 여유가..
도심의 현대인들 중 많은 이들은 과거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도심을 벗어나고 싶다는 꿈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 촌 구석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던 산업화의 시기가 훌쩍 지나버린 지금, 어떤 이들은 그렇게 우리의 아버지 엄마가 떠나고자 했던 바로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려고 하고,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현재에 애달파 하면서 도시의 한 켠을 묵묵히 차지하고 있다.
“삶이라는 거대한 싸움판에서 스스로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으로 무기력했던 마흔두 살의 여름날, 책과 음악 씨디, 쌀 한 포대와 함께 치악산 해발 700미터에 있는 흙집 한 채에 들어갔다. ‘몽유거처 夢遊去處’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서 어느 덧 9년째 살고 있는 그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일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말고 하면서, 최소한의 것으로 굶어 죽지 않으면서 제멋대로 자연 속에서 뒹군다. 매일 눈뜨면 마주하는 나무와 풀, 새소리 바람소리 짐승의 발자국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제는 자신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 비한다면 저자인 정용주의 삶은 한 편으로는 성공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화전민이 버린 움막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 그는 (아마도 처음에는 이리 오랜 시간 살게 될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벌써 9년째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 사이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내기까지 했으니) 그것도 나름대로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보여질 정ㄷ이다.
“...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애들 졸업시키고, 정년퇴직하고, 더 늙기 전에 돈을 모아 땅도 사고 그럴듯한 집이라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살아가면서 어느 때가 되어야 자신의 할 일을 다 끝내고 미뤄뒀던 삶을 시작해도 되는 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지금의 모습이 결국 제 살고 싶은 모습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는 자신의 삶에 나름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 도시에 있는 우리들 또한 ‘그저 제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니 아등바등 애달파 하며 살 것이 아니라, 그 모습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달관한 자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유유자적 자연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자의 여유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뛰어난 시적 감수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어두워져 방문을 닫고 천장에 붙어 있는 형광등의 늘어진 끈을 잡아당겨 불을 켰는데, 엄청난 말벌 한 마리가 어디에 붙어 있다 윙윙거리는 날갯짓을 시작한 것이다... 담요를 끌어당겨 얼굴을 덮고 말벌의 지치지 않는 날갯짓을 본다. 저놈이 저러다 지쳐서 잠들어버린 내 얼굴에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아, 오늘 밤 내 방 안은 얼마나 큰 꽃 속인가.”
커다란 말벌 한 마리가 들어와 나가지 않는 자신의 방에 웅크린 채 잠을 청하면서도 자신의 방을 커다란 꽃으로 은유할 때 그는 성큼 시인의 자리로 옮겨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나무와 꽃과 풀, 그리고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와 닭, 그가 머무는 집을 휘감는 물과 그가 머무는 집을 품은 산을 향하여 시인의 감성이 가득한 시선을 들이민다.
“이월 중순이다. 툰드라의 겨울 같던 매서운 추위가 한풀 꺾였다. 다 비워가는 쌀독처럼 깊이 파인 샘구멍의 얼음 표면을 부드러운 바람이 녹인다. 바닥을 긁던 샘물이 졸졸 흘러 얼음 구덩이를 채운다. 구정물이 일지 않도록 바가지로 살살 뜨던 물을 마음 놓고 한 양동이 퍼 올릴 수 있는 것도 작은 고마움이다. 그러나 봄은 아직 멀리 있고 매섭게 달려온 추위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굴속 다람쥐처럼 봄이 잠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날씨다.”
도심을 떠나 치악산 골짜기에서 9년째 살아간다면 나 또한 한풀 꺾인 겨울 추위를 향하여 ‘굴속 다람쥐처럼 봄이 잠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날씨’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 하지만 이러한 시심의 발동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누구나 지금의 모습이 제 살고 싶은 모습 아닌가’ 라는 말에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라면서 오기를 부리는 삶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 또한 받아들이자, 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향해 관대함을 보이는 삶이라면 치악산 골짜기 저자의 삶이나 테헤란로 빌딩숲 나의 삶이나 무어 크게 다르랴...
정용주 / 나는, 꼭 행복해야 하는가 / 새움 / 287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