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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7. 2024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드라이브>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이 감독, 도대체 어디 있다가 불쑥 나타난 것이냐.

  어느 정도 기대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아주 흡족한 영화 관람이었다. 이 기묘한 영화는 절대 어느 한 장르로로 모아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듯한 장르의 합종연횡의 결과물이다. 유럽예술영화와 홍콩느와르영화와 카체이스영화와 익스플로이테이션영화가 뒤섞여 있고, 범죄추격액션과 로맨스와 스릴러와 하드고어가 뒤범벅 되어 있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겉멋이 잔뜩 든 80년대 영화 속의 범죄자의 일단을 보는 것처럼 지루하다. 5분만 기다리네 어쩌네 하는 상투적인 말을 내뱉는 이 남자는 차를 운전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무게를 잡는다. 덩치도 그리 크지 않고, 어딘가 허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외양인데 괜스레 폼을 잡는 거 아냐 (이 사이에 끼고 있는 이쑤시개는 또 어쩔 것이냐 싶기도 할뿐더러), 의심스럽다. 그나마 아슬아슬한 추격전 속에서도 무표정한 남자를 대신하여, 어디선가 본 듯한 도시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시퀸스를 대신하여 적절한 안배로 뒤를 받쳐주는 음악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박진감 부족한 추격 장면과 어딘가 어색한 스턴트 장면을 지나면 이제 순박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이 의문의 드라이버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린 모자에게 호의를 베풀고 미소를 건네 받는다. 이 드라이버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도 잠시 감옥에 있던 아이린의 남편이 출소하면서 레옹만큼이나 오지랖이 넓은 드라이버는 하지 말아야 할 돈가방 운반책으로 나서면서 자기 자신은 물론 영화 전체를 한바탕 뒤흔든다.



  그리고 드디어 죽었던 사람도 일으켜 세울 듯 하드고어 액션의 향연이 시작된다. 산탄총이 그녀의 머리를 향하여 발사되는 순간 (이곳이 아마도 영화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확실히 가르는 지점이 아닐까) 화들짝 놀라고 난 다음부터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이제 언제 어디서 난데없는 하드고어 폭력씬이 등장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모텔에서 여자의 머리를 날려버린 그들의 어깨에 쇠몽둥이를 꽂는가하면, (올드보이의 최민식처럼) 장도리를 치켜 들고 총알을 먹이고, 아련한 키스신 바로 뒤에 사내의 머리를 밟아서 깨뜨려버리는 주인공이 있다. (물론 주인공의 반대쪽도 만만치 않으니 포크는 눈을 겨냥하고 면도칼은 아예 손의 혈관을 거덜내버린다, 그나마 덜 아프게 죽이는 거라는 멘트와 함께...)


  사실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그 남자의 과거가 어떻다는 것인지, 그 남자는 왜 그녀 아이린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어느 순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로 커진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저 카메라는 자유자재로 그러면서도 영리하게 워킹하며 절묘하게 피사체를 훑고 지나가고, 편집의 속도는 음악이나 음향과 절묘하게 짝을 맞추면서 관객들의 심장을 주무르는 절대 타이밍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여기에 애틋한 로맨스와 잔혹한 폭력 사이에서 배회하는 이 남자의 알 수 없는 정체성은 배우 라이언 고슬링에 의하여 완벽 재현된다. 스스로 감독인 니콜라스 윈딩 레폰을 원했다는 이 배우는 (드라이브의 제작자는 배우 라이온 고슬링에게 드라이브의 감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어느 순간 정말 미지의 드라이버 사내가 되어 있다. 여기에 잔혹한 영화 속 장면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떨기 바스라질 것 같은 여인을 연기한 캐리 멀리건 또한 마음에 쏙 든다.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영화 영웅이 된 감독이지만 실제로 감독의 고향인 덴마크에서는 영국의 대니 보일, 프랑스의 마티유 카소비츠, 미국의 쿠엔틴 타란토니와 같은 반열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러한 대접이 마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것이냐, 놀랍고 경이로운 평단의 반응에 혼쾌히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복고풍의 화면이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대신 획기적이고, 촌스러운 전자음은 절묘한 울림으로 오히려 미스터리한 남자를 향한 몰입을 완성시키는 세련된 역할을 한다.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은 어디선가 본 듯 하면서도 누구를 흉내냈다고 꼬집어 말할 수 없으니 절묘하게 계산된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스타일에 범죄가 등장하고 대충 야한 장면 몇 개 넣은 그런 영화의 실패담에 대한 대사를 슬쩍 넣으며 자신의 영화를 비꼬는 센스까지... 이런 건 타란티노를 닮은 듯...)


  각설하고, 겉멋에 대한 의심과 우려로 시작된 영화 <드라이브>의 관람은 형언하기 힘든 영화의 묘한 속맛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니,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리뷰 전체가 그러하였지만 이 부분 또한 영화보는 쾌감을 줄이게 되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원치 않는다면 눈을 질끈...) 마치 라이언 고슬링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꽤 긴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배우에게 반하다보니 이 또한 이 배우의 재주로 보여졌다) 갑자기 눈을 깜박이며 기어를 넣고 자동차를 몰고 나아가는 그런 쾌감...



드라이브 (Drive) /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 라이언 고슬링, 캐리 멀리건 출연 / 100분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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