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의 경계에서도 계속되는 이 소녀의 사랑스러운 성장통...
우리가 알고 있는 피터 잭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영화는 한 소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 소녀는 1973년 당시 14살이었고 물고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수지 새먼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기를 그녀는 죽었다. 이 자신감 넘치는 감독은 <식스 센스>와 같은 반전을 꾀하는 대신 죽은 소녀의 입을 빌러 이미 영화의 시작 부분에 자신의 죽음을 밝힌다. 그렇게 이 독특한 영화는 죽은 소녀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하여 시작하고 진행된다.
“내가 떠난 후 일어난 일들은, 내 부재를 둘러싸고 자라난 아름다운 뼈대이자 유대였다.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큰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멋진 일이었다.”
14살 이제 막 어린 아이에서 한 명의 여성으로 발돋움을 하려는 소녀의 비참한 죽음은 죽임을 당한 이후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떠돌며 짓는 어리둥절과 공포감으로 가득한 표정 속에서 극대화된다. 그렇게 소녀는 삶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억울함과 남은 가족과 남자 친구를 향한 갈망에 가득 차 죽음 저편을 향한 문을 제대로 열어 젖히지 못하고 이쪽의 삶과 저쪽의 죽음 사이에서 헤매인다.
영화의 이미지에서 가장 압권인 것은 이렇게 소녀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피터 잭슨의 환타지적인 묘사이다. 특히 유리병 속의 거대한 범선이 떠밀려 오는 해안가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한 장면과도 닮아 있다. 이러한 묘사들은 타셈 싱 감독이 혼수 상태에 빠진 연쇄 살인범의 정신 세계를 강렬한 색채로 그려낸 <더 셀>을 닮아 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같은 감독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공포와 아름다움이 교묘하게 뒤섞인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그렇다.
이와 함께 삶의 공간에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은 그것대로 무참하게 존재한다. 남겨진 핏물의 양으로 죽음을 가늠할 뿐 시체조차 찾아내지 못한 아버지는 홀로 분투하며 살해범 찾기에 몰두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과 가족을 떠나 홀로 먼 길을 떠난다. 어린 남동생은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 못한 누나의 존재를 느끼고, 그 여동생은 직감적으로 언니를 죽인 살인범의 기운을 느낀다.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기존의 피터 잭슨이 보여준 거대 블록버스터와는 전혀 다르다. 살해당한 소녀와 남은 가족이 동시에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보다 깊은 침잠 속에서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특히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소녀의 성장은 안타깝고도 아름답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여동생의 사랑을 들여다보는 시선이나 자신의 남겨진 남자 친구를 향한 마음이 드러나는 표정에는 몰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였던가. 죽음의 당사자이자 (부득이하게) 영원한 삶의 관찰자가 되어 버린 수지 샐몬을 연기한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이 소녀는 최근 액션 영화 <한나>를 통해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하였다) 압도적이다. 물론 수지의 아버지 역을 맡은 마크 윌버그, 어머니 역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 또한 적절하게 감정선을 조절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의 대척점에서 건조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연쇄 살인범을 연기한 스탠리 투치 또한 아주 좋았다.
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 피터 잭슨 감독 / 마크 윌버그, 레이첼 와이즈, 시얼샤 로넌 출연 / 135분 / 2010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