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던 한 예술가의 자연과 공산품과 인간을 아우르는..
“... 제드는 철학책 한 권을 들고 공원의 나무 사이를 거닐다가 커다란 보리수 아래에 앉기도 했지만 책을 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가 투르 드 프랑스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그는 헬리콥터가 프랑스 시골을 느릿느릿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경주자들의 무리를 뒤따르며 촬영한 이 길고도 지루한 장면들이 좋았다.”
소설은 제드 마르탱이라는 예술가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일찌감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고, 아버지와도 최소한의 유대 관계를 맺는 정도였던 그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문장은 그의 그러한 무심함을 보여주기에 적당하다. 아버지의 저택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그는 어디로도 섞이지 못한 채 부유하는 것만 같다.
“... 지도 속에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기술적 이해와 모더니티의 본질이 동물적 삶의 본질과 한데 섞여 있었다. 색깔로 구분되는 약호만 사용한 그림은 복잡하고 아름다웠으며, 완전무결한 명료함을 지니고 있었다. 중요도에 따라 달리 표시된 각각의 마을과 촌락들에서 수십, 수백여 생명과 영혼들의 맥박 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중 어떤 영혼들에게는 천형이, 어떤 영혼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을 터였다.”
그러한 그가 학창 시절 철물들을 찍었던 ‘철물 시리즈’로부터 좀더 발전하여 미슐랭 지도를 바탕으로 사진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미슐랭 지도를 보는 순간 떠오른 지도에 대한 영감은 그를 사진 작가의 대열에 올려 놓게 되고, 바로 그곳에서 올가라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도 된다. (그는 학창 시절 주느비에브라는 같은 대학 학생과 사귀기도 하였는데, 그녀는 에스코트 걸이었고, 그는 그녀가 웃음을 팔아 벌어온 돈으로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였다.)
“... 예술가라는 것, 그것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순응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었다. 예측 불허의 불가해한 메시지에 순응하는 것. 모든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제외한다면 부득불 직관이라는 말로밖에 칭할 수 없는 이 메시지는, 삶의 모든 원칙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는 빠져나갈 방도가 전혀 없는 단호하고도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창 주가를 올리던 제드는 갑자기 사진 작업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 사이 올가는 러시아로 떠나지만 그는 그녀를 잡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녀를 떠나보내고, 묵묵히 ‘소박한 직업 시리즈’를 그릴 뿐이다. 지도로부터 (주로 소외된) 직업을 가진 이들을 향하여 붓을 드는 것으로 전환한 그는 그 사이 프란츠라는 미술상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전시회를 기획한다.
“... 제가 오브제만을 주제로 삼았을 때에는, 카메라라는 도구가 완벽했거든요. 하지만 사람을 주제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의 전시회에 대하여 코멘트를 해줄 사람으로 소설가 미셸 우엘벡을 (작가는 종종 미셸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소설에 끌어들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소설가 미셸 우엘벡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점찍고 그와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진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의 예술 작업을 돌아보면서 둘 사이에는 어렴풋한 유대 관계가 형성이 된다. (여기까지가 총3부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2부까지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부로 접어들면서 소설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은둔형 예술가인 미셸 우엘벡이 자신이 키우는 개와 함께 난도질을 당하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쟈슬랭 경정의 이야기가 한동안 펼쳐진다. 그리고 이제 미셸 우엘벡의 죽음과 그 비슷한 시기의 아버지의 안락사라는 두 가지 경험을 겪으며 제드는 승승장구하던 화가로서의 생활을 접고, 시골에 있는 자신의 조부모댁과 그 근처의 땅을 사서 이십여년에 걸친 길고 긴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소설은 대망의 에필로그를 통해 제드가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시기, ‘존재의 휴식’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한 마지막 예술 작업을 보여준다. ‘순간의 충동’에 따른 비디오그램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은 자연과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추상적 예술 작품이 되어서 남았고, 그는 죽음 직전의 마지막 인터뷰를 통하여 자신은 그저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예술관을 토로한다.
몇 년의 사이를 두고 발표되는 그의 작품을 읽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스스로를 조연으로 이용하면서, 텍스트가 아닌 추상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를 주연으로 등장시키면서 예술을 논한다. 제드가 만나는 여성들을 통하여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의 부모와 (자기 자신인) 소설가를 통하여 죽음과 가족애와 예술가적 소통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진행에 있어서도 중간 부분에 느닷없이 난도질 살인이라는 요철이 나와 덜컹, 하기는 하였으나 과거의 작품에 비해서는 다소 파격을 덜어낸 느낌이다. 물론 실명으로 등장하는 많은 이들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마음껏 조롱하고 있으니 마냥 얌전해졌다고 보기는 민망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 작가, 콩쿠르상의 수상과는 별개로 신간의 발간 소식에 귀 기울여지는 소설가로 남아주기를 희망해본다.
미셸 우엘벡 / 장소미 역 / 지도와 영토 (La Carte et Le Territoire) / 문학동네 / 518쪽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