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으며, 출판사에서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으며,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장한 늦깎이 작가, 그것도 연애소설을 쓰는... 게다가 그렇게 쓴 연애소설이 야마모토 슈고로상, 나오키상 등을 수상하였으니 이 또한 범상치 않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책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 중 표제작이다. 유수의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애초부터 그 가문의 사람들과는 달랐던 아키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술집에서 만난 나즈나와 결혼을 하고, 별거를 하고, 다시 합쳤다가, 완전히 이혼을 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묘한 것은 연애소설이기는 한데 뭔가 애틋한 감정보다는 굉장히 건조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 연애의 속살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으니 이름을 붙여보자면 리얼리즘 연애소설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 갈등의 대부분은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합이나 배분에 착오가 생겨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저것이, 저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상은 늘 삐걱거리며 불균형한 게 아닐까?”
아키오가 반하여 자신의 가문과 연을 끊으면서까지 결혼을 감행하였던 나즈나는 자신의 첫 남자였던 신이치를 잊지 못하여 집을 나가고, 집안에서 아키오의 짝으로 삼으려 했던 나기사는 아키오가 아닌 아키오의 작은 형을 사랑하고, 나기사의 구애를 받은 아키오의 작은 형은 사실은 자신의 형수를 마음 속에 품었고, 이 모든 사랑의 굴레 속에서 처참하게 일그러진 아키오는 자신의 직장 상사이기도 한 도카이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부터 위안을 받고, 그렇게 결국 아키오는 도카이와 결혼을 한다.
“... 살다 보면 온갖 일이 다 있어. 그래도 몇 년쯤 지나면 그 어떤 일도 별거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지. 인간은 그렇게 매번 스스로에게 배신당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그리고 그 좋아함이 결실을 맺거나 중간에 파기되는 일은 사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온갖 일들 중의 하나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할 줄을 모르고 바로 그 연애라는 일에 매진하니, 소설 속 도키오의 말마따나 ‘그렇게 매번 스스로에게 배신당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와 함께 실여 있는 소설이다. 기존의 연애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이 또한 리얼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나친 파격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내용은 간단하고 뻔하다. 결혼을 앞둔 직장 여성인 미하루가 과거에 자신의 직속 상사였으며 불륜의 상대였던 구로키를 다시금 만나게 된다는 설정...
대충 이쯤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미하루를 잊지 못하는 구로키의 순정이나 그 반대의 순정, 아니면 미하루의 결혼을 방해하는 구로키와 그러한 구로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는 미하루의 여정 정도일테지만 소설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하다. 그러니까, 음, 구로키는 미하루가 결혼 예정자인 세이지와 섹스를 한 날을 잘도 골라서 그날 저녁 미하루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 미하루를 묶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구속 섹스... 넘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구로키는 그렇게 미하루를 밤새 괴롭히며 섹스를 하고, 미하루 또한 그러한 구로키와의 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세상에...
이렇게만 보면 무슨 일본 AV 영화의 소설 버전이려나 싶지만, 그 안에는 또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기업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존재하니 비즈니스 소설인 듯 싶고,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을 치르는 미하루, 그리고 그러한 미하루에게 마지막 순정이라도 보이는 듯, 자신의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가버린 구로키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
연애소설은 이제 그만, 하면서도 틈틈이 연애소설을 읽는다. 게다가 간혹 이런 독특하고 파격적인 연애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기도 하다. 연애소설이지만 그간의 연애소설이 보여주던 관습을 슬쩍 뛰어넘는 과감함이 나쁘지 않다. 가끔 늙은 남자인 작가의 빙의라고 보여지는 훈계조의 말들이 튀어나오지만 뭐 그것도 못봐줄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읽어야 할 연애소설이라면 이런 연애소설로 한번쯤 비틀고 가는 것도 좋겠다.
시라이스 가즈후미 / 김해용 역 /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ほかならぬ人へ) / 298쪽 / 2011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