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안녕 시모키타자와》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의 유혹에 굴복당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by 우주에부는바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


요시모토 바나나를 비롯해서 일본의 사소설 경향을 대변하는 작가들의 글을 어째서 그렇게 많이 읽고 좋아하였을까, 생각하였는데 위의 저 문구를 읽다가 바로 저것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소설은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들로 범벅이었던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음, 하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부분이 중요한데, 이처럼 살짝 밀고 당기는 묘한 여운을 가진 일본 소설이 어떤 확신으로 가득한 우리 소설에 비해 매력적이었던 것 아닐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두 번째는 좀 더 느긋했다. 둘 다 옷을 벗고, 시트에 휘감겨 달콤한 섹스를 했다. 신야 씨의 테크닉은 놀라웠다. 이런 경험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이 기대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신야 씨와 오래 사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물론 이제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비롯해 많은 일본 작가의 글을 읽을 때 가졌던 최초의 흥미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가령 소설 속의 요시에씨가 조금씩 다가서던 신야씨와 결국 섹스를 하게 되지만, 정말 좋은 섹스 뒤에 느닷없이 결별을 예감하는 위와 같은 장면이 과거에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로 다가섰지만 이제는 하나의 패턴처럼 읽혀진다고나 할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그 묘한 맛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해서 몇몇 작가의 소설은 아직 읽고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아빠를 잃고서 심각하게 낙담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 고통은 보디 블로를 맞았을 때처럼 두고두고 밀려왔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니 깊은 나락에 빠져 있어 고개마저 겨우 들어 올리는 상태가 되풀이되었다... 나는 상당히 까다로워졌고, 몸도 한층 작아지고 굳어진 느낌이었다...”


소설은 이제 막 이십대가 된 요시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시모키타자와라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얼마전 키보드 연주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젊은 내연녀가 건넨 술을 마시고 정신이 없는 채로, 타의에 의한 자동차 질식 동반 자살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였다. 이 어이없는 상실감 속에서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구했고, 그곳으로부터 일분 거리의 이층집을 구한 것이다.


“나는 아빠 잃은 슬픔밖에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 잃은 내 기분을 모른다. 엄마의 진짜 마음은 엄마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여곡절이 많은 독립을 실행에 옮긴 요시에의 집에 갑자기 엄마가 들이닥친다. 요시에게는 아빠, 그리고 엄마에게는 남편인 남자의 죽음이라는 공통 분모는 결국 엄마를 집에 들이게 되고, 이들 모녀의 시모키타자와에서의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을 통하여 죽음은 조금씩 옅어지고, 두 사람은 그 거리에서의 삶에 조금씩 흡수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거리란, 그런 거다... 사람들의 욕망과 추악함과 비참함과 사랑과 훌륭함과 웃는 얼굴과 풍요로움, 그런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엉킨 무의식의 넝쿨 같은 것. 설사 도끼로 싹둑 잘라 낸다 해도, 불태워 버린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속 경치까지는, 그 안에 살아 있는 시간까지는 빼앗을 수 없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물론 사이사이 맨 위에서 언급한 신야씨를 비롯해 아버지의 동료였던 야마자키 아저씨, 모녀가 들르는 음식점 사람들과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 등이 등장하지만 크게 이야기를 흔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금살금 모녀의 뒤를 밟는 것만 같은 소설이고, 그렇게 주절주절 계속되는 넋두리가 나이브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기대하지 않으니 그럭저럭 일을 만 하였지만 크게 권장할 만한 소설은...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역 / 안녕 시모키타자와 (もしもし下北澤) / 민음사 / 289쪽 / 20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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