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문단을 향하여 날아오른 과학 소설의 삼엽기는 신의 궤도에 이를 수
2010년에 나온 소설집에 실린 <크레인 크레인>(이 단편에서 등장한 김은경과 이번 장편 소설 속의 주인공 김은경은 닮아 있다)에 등장하였던 기계화된 신,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였던 우주로 날아간 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에 등장하였던 엄청난 규모의 합체로봇 등이 더욱 거대화된 세계관 (이라기 보다는 우주관이라고 해야 할려나) 으로 창조된 것이 이번 장편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니예는 휴양행성이었다. 지구에서의 숨막히는 삶을 마무리하고 남은 생을 낭만적이고 여유롭게 보내기를 꿈꾸는 이십만 명의 부자들이 공동출자한 인공낙원 개발계획의 최종 결과물이었다...”
소설은 나니예 행성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하여 벌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742개의 항성의 생명 반응’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우주 초유의 사고에 대한 조사보고서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나니예 행성에서의 사고는 지금으로부터 153200년전, 그러니까 지구 기준으로 서기 20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기원에 이르게 될 수 있으며, 바로 그 기원에 김은경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버티고 있다.
인공위성 재벌이었던 아버지의 숨겨진 딸이라는 출생 내력을 가진 김은경은 엄마의 죽음 이후 러시아에서 비행 수업을 받던 중, 기술발전에 반대하는 세력의 편에 서 있는 사랑하는 사람 바클라바를 구출하려다가 결국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고, 이러한 딸을 도와주려는 아버지에 의해 동면된다. 그리고 김은경의 의붓언니인 김경라는 이런 김은경에 대한 저주를 끝까지 풀지 않는다.
“...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데, 지구에서 출발한 애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따라잡아... 이대로 몇만 년이 지난다고 생각해봐. 결국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우주선이 우리보다 먼저 나니예에 도착하게 돼. 그때는 우리도 구식 우주선이 된다고...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가고 있어.”
그렇게 동면된 김은경을 비롯한 이십만 명의 지구인을 태운 우주선 바이카스 타뮤론은 2130년 드디어 지구를 출발했지만 그들은 결국 사소한 오차로 인하여 제대로 나니예 행성에 도착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 사이 발전한 다른 우주선에게 추월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나니예에는 정부 역할을 하는 행성 관리소를 비롯하여 신을 둘러싼 해석으로 대립하는 이론신학회와 관측신학회라는 두 종교 집단이 존재하게 된다.
“... 그해 겨울 신께서 직접 찬란한 빛을 발하며 세상을 서른네 바퀴 회전하시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는데, 그때 하난산 성지를 비롯한 전 세계 여섯 군데의 성지에서 스물한 명의 사도가 신의 궤적을 관찰하고 그 내용을 후대에 전했다. 그것을 추려내고 정리한 것이 바로 지금의 여섯 복음서였다.”
그리고 드디어 나니예에서는 김은경의 동면 해제와 함께 최초로 그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신의 궤도, 그 신의 궤도에 진입하여 신과 맞닥뜨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신의 궤도를 찾을 수 있는 예언자인 나물 신부,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김은경 (<레지던트 이블>의 엘리스를 닮아 있다), 관리사무소장인 황문찬, 그리고 이론신학회의 문원식 주교와 관측신화의 최신학 주교를 비롯한 나니예 행성의 인물들이, 신의 산물이기도 한 비행기를 타고 (혹은 끌고) 다니며 벌이는 전투가 스펙타클하게 벌어진다.
“... 나니예에서는 더 뛰어난 기술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기술은 아니었다. 진보는 절대선이 아니었다. 느릿느릿, 때로는 기술 수준을 뒤로 돌리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그게 반드시 퇴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 자체가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자그마치 십오만 년 뒤라는 시대 배경, 항성을 만들거나 리부팅할 수도 있게 된다는 상상력, 십오만 년을 날아가는 그리고 그 사이 발전하는 기술에 의해 따라 잡히는 우주선 안에서의 전멸이라는 설정 등을 보자면 이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만큼이나 확장 가능한 것인지를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다. 비주류라고 여겨지던 과학소설을 주류 문단 내부로 끌어들이는 탁월함을 갖추고 있는 작가이니 가능한 상상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 더욱 빛이 나는 것은 언제나 그 상상력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인공위성의 출현과 그러한 인공위성을 이용한 재벌의 등장이나 그러한 재벌에 반대하는 테러리스트들이라는 지구 위에서의 설정이 그렇고,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뉘어 대립하는 나니예 행성의 종교(혹은 정치)경제사회 상황 또한 우리들 사회의 각종 아이러니를 은유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아직 비주류인 장르 문학과 우리 사회의 주류 문학이 어떻게 접점을 만들고 또한 서로에게 파고 들 것인지를, 이 작가를 통해 지켜 볼 수 있어서 좋다.
배명훈 / 신의 궤도 / 문학동네 / 전2권 1권 (빨간 비행기) 327쪽, 2권 (하얀 비행기) 326쪽 / 2011 (2011)
ps1. 소설을 읽다보면 이현세의 <아마겟돈>, 미야자키 하야호의 <라퓨타>나 <나우시카>가 떠오른다.
ps2. 책의 맨 뒷장에 지구와 나니예 행성의 연표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이런 연표라면 책의 앞장에 배치를 했어야지, 라고 불평을 해본다. 더불어 나니예 행성의 지도 같은 것도 함께 만들어줬어야 옳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불친절해 보인다. 누군가 이 소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니예 행성의 지도를 작성해 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작가는 그 지도 작성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