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기시감 가득한 90년대 캠퍼스 연애담을 읽다...
학창 시절 이런 우스개소리를 하고는 했다. 빈곤의 60년대, 번영의 70년대, 풍요의 80년대, 환락의 90년대라고...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흘렀으니 쾌거의 00년대, 반동의 10년대 이렇게 또 이름을 붙여야 하려나. 소설은 그러니까 ‘90학번 1학년, 열아홉 살’ 한차현이 (자신의 실명을 고스란히 사용하다니. 어째 연거푸 읽은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작가 자신 스스로를 거론하고 있다. 일종의 트렌드인가...) 보낸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90학번 1학년. 열아홉 살...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너절한 시절. 세상모르는 내게도 90년대는 80년대와 달랐습니다. 무엇을 하건 어정쩡하고 무엇을 꿈꾸건 너절했으니 그것이 90년대. 80년대가 격렬했다면 90년대는 야비했습니다. 80년대가 야생마 같았다면 90년대는 뒷골목의 고양이 같았습니다...”
내가 88학번이니 주인공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절을 (물론 학교를 다닐 때에는 두 학번 차이라면 하늘과 땅 쯤의 거리감으로 존재하였지만) 보냈다. 게다가 주인공이 입학하기 전 두 해를 학교에서 보내기는 하였지만 격렬과 야비로, 야생마와 뒷골목 고양이로 80년대와 90년대를 구분지을만큼 온전히 80년대를 살아내지는 못하였다. 나는 그저 80년대의 끄트머리에 겨우 한 발 걸치고 있었을 뿐이다.
“인터넷커녕 PC 통신도 없던 시절. 핸드폰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신용카드커녕 교통카드도 없던 시절.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니 불편하지 않았고 장차 그런 세상이 올지 알지 못했으니 불만스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도 스마트폰 앱도 없지만 만나서 함께 다니는 곳은 어디건 서울 뒷골목의 숨은 맛집이요 주말 저녁의 데이트 추천 명소였습니다. 단축키 1번으로 연결되는 핸드폰은 없지만 약속 시간 지나도 오지 않는 이를 영문 모른 채 한 시간씩 기다려줄 여유가 있었습니다...”
소설은 같은 문학반 동기인 차현과 은원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철지난 90년대에 대한 기록물이다. (소설을 쓰면서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샅샅이 훑었다는, 그리고 아마도 실제로 90학번 즈음이 아니었을까 여겨지는) 작가는 당시의 서울 시내 곳곳을, 각종 대중 문화를, (아주 조금이지만) 학생 운동 상황을, 그리고 그 시대의 어린 사랑을 스피디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다가, 길가에 멈춰 선 택시를 돌아보다가, 별이 떴는지 달이 떴는지 모를 밤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아이고 못살아, 할머니처럼 중얼중얼.”
88학번 미림 선배를 좋아했다가 보기 좋게 차이고 뒤이어 키스를 조르면서 (위의 문장은 바로 그 키스를 조르는 한차현 앞에서 은원이 보여준 행동에 대한 묘사다) 가까워지게 된 동기 은원과의 연애를 지켜보니 기시감에 빠져들고 만다. 대학 내내 캠퍼스 커플로 시간을 보냈던 나와 현재의 아내 (그렇게 이제 아내와 만난 지 이십여 년이 되었다.) 사이에 있었던 많은 일들이 소설 속에서 보편 타당한 지위를 얻게 된 느낌이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아내는 출장 중이다. 오늘 돌아온다. 좀더 잘 놀았어야 했는데... ^^;;)
“... 고백건대 1990년도 이전의 세상과 그 이후의 세상이란, 내게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두 개의 우주와도 같다는 것을. 은원을 알기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내가 같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듯.”
하지만 소설은 딱 거기까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90년대의 문화적 풍속을 소설적으로 복원하였다, 라는 수식은 조금 과하다. 90년대 캠퍼스 커플의 사랑에 대한 매끈한 기록 정도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나와 같이 정확히 그 시기, 비슷한 공간에서 연애를 하였던 사람이 (그러니 나는 이 소설을 단번에 읽을 수 있었지만) 아니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그렇게 소설은 그때 그 시절의 연애에 대한 그야말로 작은 이야기이다.
한차현 / 사랑, 그 녀석 / 열림원 / 371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