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하게 투여된 인물과 에피소드가 오히려 탈북자의 유령 같은 삶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새로운 유형의 분단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동시에 미스터리 추리물의 외양을 띠고 있다. 그런가하면 MMORPG 게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리니지, 그리고 포스트사이버펑크 만화로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한 공각기동대라는 두 축을 통하여 그 내용과 형식을 이끌어가고 있다. 호러와 SF의 요소를 빼고 (그렇다고 해도 빠진 눈알이나 절단된 손목, 공각기동대의 세계관 등을 고려하자면 이또한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도...) 거의 모든 소설 장르의 요소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 나는 북조선에서 태어나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서 운 좋게 마음이 비단결인 한국인 목사를 만났다. 그의 소개로 중국에 교환 교수로 온 목사의 형 집에 들어가 2년 넘게 살다가 한국으로 왔다.”
소설의 주인공은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한 하림이라는 청년이다. 하지만 이 청년은 계속해서 스스로 혼란을 느낀다. 사실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함께 했던 동료인 하림의 이름을 쓰고 있는 나의 본명은 주철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나는 컴퓨터 게임 리니지2에서 바츠해방전쟁을 이끌었던 작은 혈맹의 군주인 쿠사나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나는 게으르다는 이유로 삐끼에서조차 잘린,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하는, 몇몇 단역으로 드라마에서 얼굴을 비친 게 전부인, 최근까지도 PC방에서 두문불출 한 달 동안 게임을 일삼았던 탈북자 출신 루저일 뿐이다.
“... 탈북자의 상당수가 이북의 변방 출신이라 남한에서 쓴맛을 보기 전까지 여기가 자신들이 살았던 인정 넘치는 촌동네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나중에 노숙자가 되고, 일하지 않으면 끼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자본주의가 어떤 체제인지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탈북자들이다. 백석 공원의 한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 남자도 탈북자였고, 백석 공원에 있는 제단에 눈알을 바쳐야 했던 사람도 탈북자였다. 주점에서 몸을 팔고 있는 인희도, 사과를 팔러 다니는 무산 아저씨도, 냉면집에서 일하는 정주 아줌마도 탈북자이다. 물론 이들 이외에 엄지나 손오공 등 남한 출신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 또한 탈북자인 이들과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래 계층일 뿐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종이색까지 바꿔가며 아예 그것을 기록한 부분을 변별하여 보여주고 있는) 바츠 해방 전쟁은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 최하층과 맞닿아 있는 게임 속 민중 캐릭터들의 반란 전쟁이다. 그렇지만 그는 끊임없이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가 추구하였던 혁명을 떠올리며 고루한 현실에 상상 속 반기를 들뿐, 아무런 액션을 취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실제를 매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주철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진범이 알려지면서 누명도 벗게 되지만 나의 현실에서 바뀐 것은 없다. 나는 다시 바츠해방전쟁을 통해 (게임 속) 민중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가상의 공간으로 돌아갈 뿐이다. (사실 바츠 해방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생겼던 게임 속 변화 또한 그리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들 탈북자 내지는 이 사회 최하층 민중들의 (게임 속에서나 봉기가 가능한, 그마저도 단시간의 성공에 그치고 마는) 유령같은 삶을 소설은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지만 소설이 마냥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그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듯 모른 체 하던 소재인 (<무산일기> 혹은 <크로싱>과 같은 영화가 있기는 하였지만 주류 문단에서 이들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는 않다) 탈북자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식을 통하여 이 소재를 버무리고 있지만 고기나 나물 따위가 너무 과하게 투여된 비빔밥이 된 형국이다. 주요 인물이나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너무 방만하고,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들도 너무 많이 삽입되어 있다. 리니지 세상과 현실 세상의 절묘한 크로싱에 좀더 집중하면서 곁가지들을 정리하였다면 보다 응축된 가치관에 도달할 수도 있었다고 보여지며, 그것이 아쉽다.
강희진 / 유령 / 은행나무 / 335쪽 / 2011 (2011)
ps1.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 Ghost in the Shell)는 시로 마사무네가 만든 포스트사이버펑크 만화이다. 발표된 이후 지속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켜 극장판 영화, 텔레비전 시리즈, 비디오 게임 등등 다양한 매체로 옮겨 제작되었으며 세계적으로 다른 많은 작품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위키백과 중
ps2. 바츠 해방 전쟁은 2004년 6월 MMORPG 리니지 2의 바츠 서버에서 발생한 사용자 사이의 가상 전쟁으로, 실제 시간으로 약 12개월, 게임시간으로는 48년 동안 진행되었다. 이 전쟁은 사용자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가상 현실(여기서는 온라인 게임) 속 서사의 예로 거론되고 있다. - 위키백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