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캐릭터와 리듬감 넘치는 문장에도 불구하고 아프진 않은 성장통.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 공고에 다니는 태만생의 성장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실 이런 경연작 중 많은 작품이 성장하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는데, 이번 작품 또한 그렇다. 어쩌면 이런 성장통이라는 소재야말로 (이제 막 문학을 시작하는 신출내기 작가에게 있어) 꽤 안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끄집어 내거나 하는데 있어서도, 자신을 회상함으로써 보다 수월하지 않을까...)
이처럼 성장소설이 많으니 성장소설을 쓰려고 마음 먹은 이들의 고심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공법으로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는 일대기를 작성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겠지만, 이런 경우 비슷비슷한 많은 작품들과의 경쟁을 감내해야 한다는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 작가는 이제 다 자란 고등학교 2학년 (이제 곧 3학년이 될, 그러니까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열 여덟 살이라는 나이라는 성장통의 엑기스만을 뽑아 놓을 수 있는) 태만생의 한 시기만을 집중적으로 노린다.
“캐리어 하나에 내 부모의 짐이 모두 실렸다. 나는 공항까지 함께 가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따라오는 것을 마뜩잖아했다. 내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도 싫다는 엄마의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굳이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게, 자꾸 상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태평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 태평대와 욕을 달고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잠을 달고 사는 엄마라는 유머러스하고 대책 없는 캐릭터의 부모가 느닷없이 아들을 (비록 공고이기는 하지만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둔 아들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코리아에 남겨놓고 아메리카로 떠난다는 색다른 설정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게다가 이 아들은 자기 나름대로 천애고아처럼 살아갈 수 있는 즐거움과 약간의 아쉬움 속에 군말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 이 시대에 걸맞는 쿨함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이 나이 또래의 주인공에게 빠질 수 없는 사랑이 적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중학교 때 만난 오선은 공고에 다니는 오빠를 자신의 이상형으로 밝혀서, 나를 공고생으로 이끌었으나 결국 나와 함께 섹스를 한 것은 오선의 친구인 유진이었다는 사실이 적당히 삽입되어 있다. 또한 우정도 빠질 수 없으니 성적인 정체성에 시달리는 친구 태화를 등장시킴으로써 모든 구색을 맞추고 있다.
“....이태원에서 조선, 즉 한국인이 비주류였던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내려온 전통인 거라, 이제 여기서는 오리지널 조선놈들이 이태, 말 그대로 다르게 생긴 놈들이 되는 거고... 엄밀히 말하면 여긴 코리아가 아니야... 가방으로 치자면 짝퉁이 진퉁이 되는 동네고, 진퉁이 짝퉁이 되는 곳이란 말이지...”
여기에 부모를 저 멀리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남은 주인공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이태원이라는 설정이 가미하면서 이야기의 외연을 확장시키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방인의 성적 수탈에 의해 낳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장소로 처음 시작된 이태원이라는 동네, 그리고 외국 군대의 주둔지라는 과거를 거치면서 현재는 짝퉁 명품 유통의 최전선이 되고 있는 이태원을 거점으로 삼음으로써 태만생의 얼치기 성장과 소비자본주의의 어줍잖은 명암을 적절히 교배시키는 것이다.
사실 캐릭터들이 톡톡 튀고 리듬감 있는 문장을 통하여 안정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장점 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작품이다. 간혹 겉도는 유머들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미국으로 떠난 부모님으로부터는 아직도 연락이 없는데) 동해안에서 태만생의 부모가 가져간 것과 비슷한 캐리어 속의 남녀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발견한 이후, 태만생이 동해의 한 도시에 도착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엉뚱하기 그지 없다. 도무지 지금까지의 소설 진행과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복선을 맨 마지막에 던지니, 반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을 알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이 되고 말았다. 유머 소설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권장 섭취량을 준수하지 못한 비타민을 삼킨 기분이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황현진 / 문학동네 / 283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