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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9. 2024

조용헌 《조용헌의 백가기행》

(거래 가격이 아니라) 집에 깃들어 있는 보다 높은 가치를 고려하여 뽑은

  유려한 문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융숭한 사유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조근조근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는 저자이다. 그래서 오히려 작은 믿음이 간다. 날라다니는 듯 현학에 물들어 있다거나 날아가는 듯 현혹적인 대신, 그저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그렇다고 여기게 된 이치를 나누고자 하는 정도의 태도가 작가의 글에서 보여진다.


  이번 책에서는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성북동의 전만 좋은 집에서 주변의 재료들만을 이용해서 단돈 2만 8천원으로 만들어낸 도공의 오두막집, 드넓은 대지 위에 대궐을 지었던 도공들의 손을 빌어 지은 럭셔리 저택에서 또 다른 지리산 자락에 스님이 사준 시인의 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물 두 채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 평소에 나의 지론이었던 가내구원 家內救援과 맞아 떨어지는 콘셉트이다. 멀리 나가서 헤맬 필요가 없다.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성스러움을 느끼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실 <조용헌의 백가기행>은 집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집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봐야 하겠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서 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집을 위해 하나의 도구처럼 살아가는 인간을 확인할 일이 더 많은 현대 사회, 그러니까 집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을 바라보며 책을 쓸 결심을 했다는 저자는 그래서 집을 도구로 삼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명재 윤증고택의 굴뚝은 1m 정도 높이로 나지막하다. 그 이유는 주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부잣집 굴뚝 연기는 위화감 조성의 원인이었다. 또한 명절 무렵에는 추수한 나락을 곧바로 창고로 옮기지 않고 일부러 대문 바깥에 일주일 정도 야적해놓았다. 주변의 배고픈 사람들이 퍼 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의 터와 집의 구조, 그리고 그 집을 구성하는 구조물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품성과 그러한 품성이 깃들어 있는 역사에 주목한다. 더불어 작가가 살피는 집은 그 규모나 시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집을 짓기 위해 기울인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의 핵심에 무엇이 깔려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는 12년간에 걸쳐 자신의 집을 지은 도예가에게서 직접 듣는 (아래와 같은) ‘집을 지으면서 염두에 둔 핵심 원리’에 크게 고개 주억거릴 수 있다.


  “... 첫째는 집이 편안해야 한다. 집이 사람을 누르면 안 된다... 둘째는 기능이다. 사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 셋째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집이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집을 단순히 현재의 상태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지금 당장 사고 파는 데 기준이 되는 실거래가) 보다는 ‘집을 둘러싼 산세와 물의 흐름’, ‘집의 역사’, ‘역대 집주인의 인생’, ‘건축적 특징’, ‘정원의 조성 방식과 심은 나무’, ‘실내 장식과 가구’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 이후까지를 고려하여 (물론 미래에 얼마나 집값이 오를 것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집의 가치를 매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이 말이 맞지 아니한가.



조용헌 / 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 / 디자인하우스 / 289쪽 / 2010, 20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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