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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8. 2024

김석철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시간의 숨결을 간직한 공간을 향한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흠모...

  건축 또는 건축가들은 어떤 경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대학으로 치면 예술대생과 이공대생의 중간쯤 혹은 인문대생과 이공대생의 중간쯤에 그들 그리고 그들의 결과물들을 위치시켜 놓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건축가 김석철의 글에서 인문학적 사유와 예술가적 감수성을 확인한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 산 자는 죽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자의 공간은 죽은 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의 분신인 산 사람이 죽은 자의 육체를 위해 만든 것이다.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산 자들은 계속 죽음의 공간을 만든다.”


  책은 모두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죽음의 공간, 신의 공간, 삶의 공간, 인간의 공간이라는 구성으로 저자는 인류에게 남겨진 건축 유산(때때로 최근의 건축물도 포함하여)을 차근차근 설명해 간다. 각각의 건축물을 설명하는 장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앞자리에 놓고, 그 다음에 자신이 직접 확인한 건축물에 대한 감상(건축물을 볼 당시의 자신의 상황을 곁들여서)을 적는다.


  “... 인간 스스로가 바로 역사이다. 역사와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는 일은 바로 우리 삶의 현장을 보는 일이다. 카이로에는 반만년의 시간이 현존하고 있다. 경주에 2000년의 시간이 실재하도록 하는 일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저자가 작성한 <세계건축기행>에 사실 우리의 건축물은 없다. 어떤 이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건축문화유산이 책에 없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반기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나라의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는 일 또한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가 유지하고 있지 못한 시간과 공간의 축적을 되새기도록 부추긴다.


  “... 천년은 그대로 지속한 도시에는 천년의 지혜가 쌓여 있게 마련이다. 성곽 주위를 돌아 다시 시청 광장으로 나온다. 광장 도처에 시민들이 나와 있다. 1000년 넘게 여기 살던 사람들 사이에 함께 앉는다. 천년의 도시에서는 천년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사는 단절의 역사다. 우리는 50년 전 서울 사진을 보고도 놀란다. 그러나 이딸리아에 오면 100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광장에 나와 앉은 그들에게는 1000년의 시간과 공간이 함께 있다. 하루에 다 걸을 수 있는 크기의 도시지만 그들은 1000년을 걷는다.”


  시간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들, 그리고 그 공간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현대의 인간들에 대하여 저자는 애정을 갖는다. 동시에 그러한 공간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그가 하루면 다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 싼 지미냐노’의 시민들은 ‘1000년을 걷는다’라고 표현할 때 이 건축가의 솔직함에 솔깃하게 된다.



김석철 /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 창비 / 304쪽 / 2011 (1997)



ps.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의 건축물들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죽음의 공간 - 역사의 상형문자 피라미드, 지하의 무덤 도시 까따꼼베, 위대한 사랑의 시학적 공간 타지 마할,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고대 도시국가 떼오띠우아칸, 죽은 자들의 작은 도시 싼 까딸도 묘지

제2부 신의 공간 - 아테네 역사문화의 인프라 아끄로볼리스, 모든 신에게 바쳐진 공간 빤테온, 일본 조형의지의 형이상학 이세 신궁, 축복과 성령의 공간 성묘 교회, 인류가 이룬 최고의 내부공간 아야 쏘피아, 이슬람 시각예술의 정수 반석 위의 돔, 공간으로 상형화된 중국인의 사상체계 천단, 비잔띤 최고의 건축 성 바씰리 사원

제3부 삶의 공간 - 로마 문명의 심장부 포로 로마노, 도시로 흐르는 물의 길 가르 다리, 수세기를 아우르는 건축군의 합창 싼 마르꼬 광장, 천년도시 카이로 최대의 바자르 한 알 할릴리, 현대미술의 기념비적 산실 구겐하임 미술과

제4부 인간의 공간 - 나뽈리에 피어난 예언적 도시건축 메가리데 성, 역사가 숨쉬는 도시적 규모의 건축군 자금성, 육백년을 거듭난 모스끄바의 원형공간 싼 지미냐노, 오천년 문명을 포용하는 그리스의 작은 섬 싼도리니, 자연과 조화하는 고밀도 주거형식 유니뜨 다비따씨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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