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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9. 2024

윤광준 《윤광준의 생활명품》

생활 속 명품 아이템들을 통해 덜컥 늘어가고 마는 남성들의 위시리스트..

  ‘명품’ 이라는 상표명을 출원해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자매품으로 ‘외제’라는 상표명도 같이 하려고 했다.) 물론 시도해보지 않았고, 아마 출원신청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고유명사는 불허한다는 정도의 설명과 함께 퇴짜를 맞았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들끓는 것이 명품이고, 그 명품을 향한 두 가지의 마음, 그러니까 명품을 대하는 세간의 태도를 향한 경멸의 마음과 그 명품을 나 또한 소유하고 사용하고 싶다는 질시의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이렇게 명품이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들어간 책이 나왔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좋아하는 일에 걸맞은 물건의 격을 갖추는 일은 흉이 되지 않는다. 사진 작업에 대한 애정을 웃도는 좋은 물건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을 접대하는 선물인 까닭이다. 소유의 쾌감보다 중요한 점은 존재감에 어울리는 의식의 환기다. 비싼 값을 주고 힘들게 구한 명품이라 자랑만 하는 것은 천박한 행동이다...”


  게다가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품, 그러니까 옷이며 신발, 가방이나 시계 등 외관을 치장하기 위한 패션 도구인 명품이 아니라 ‘생활명품’이라고 명명된, 우리가 실제 생활을 함에 있어서 필요로 하는 도구로서의 명품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뭐 저따위 것들에서까지 명품 운운해, 라며 발끈할 이도 적지 않겠으나 가만히 그 설명을 들을라치면 (물론 가격을 보면 다시 한 번 뜨악해지는 것들도 있지만) 적당히 수긍할 수 있다.


  “진정 좋은 물건은 시간을 극복하는 힘을 지닌다. 그 실체는 사용가치를 웃도는 아우라일 것이다. 아우라는 시대의 역량과 인간의 예지를 통해 덧붙여진다. 얼치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흉내 내지 못한다. 시대의 정신은 살아남은 유산으로만 파악된다. 과거란 번복할 수 없어 아름답고 처절하다. 쉽게 범접하지 못할 물건의 경지를 확인하는 일은 행운이다.”


  특히 대부분의 물건들을 직접 구매하여 사용하고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니 신뢰도 갖게 되다. 또한 현재 우리의 명품 구매 패턴과는 거리가 먼, 그러니까 나의 명품 사용을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야 하는 명품에 대한 선호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명품들을 발굴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추상적 감각의 세계는 절대가치의 추구로 다가설 수 있을 뿐이다. 합리나 효용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무한체험을 통해서만 다가설 수 있는 게 추상적 감각의 충족이다. 고급스러운 가치는 언제나 애매한 신비감으로 포장되어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감각은 모호한 실체에 외려 열광하고 규명의 기제를 강렬하게 발동시킨다...”


  이와 함께 재미를 북돋아주는 것은 명품을 구매하는 과정이나 명품을 사용하는 경험 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함으로써 그야말로 ‘생활명품’을 소개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처럼 구체적이고 즉물적인 접근은 때때로 보다 깊은 차원의 접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아래와 같이 주방용 칼 하나를 가지고서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잡아채는 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있다. 대개 남자는 이상주의자이고 여자는 현실주의자란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온갖 도구부터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와 ‘있는 것을 왜 또 사들이냐’는 여자는 매번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남자는 결국 원하는 주방용품을 사고 만다. 남자는 연구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여자는 음식을 위해 연구한다.”


  책을 읽다보면 아, 이건 정말 갖고 싶다, 라고 생각하며 위시리스트에 올리기도 하고 (가격이 싼 소품들도 많으니 당장 구매를 위하여 장바구니에 담을 것들도 많다), 죽는 날까지 이러한 물건에 이만한 돈을 소비할 여력이 생기기는 할까,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약간의 대리만족은 가능할 듯도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남성인 작가가 철저히 자신의 생활 속에서 찾아내는 아이템들이다보니 여성들이라면 이게 뭐야, 하고 넘어갈 공산이 크다.



윤광준 / 윤광준의 생활명품 / 을유문화사 / 352쪽 / 2008, 2010 (2008)



  ps. 책에 소개된 60가지의 생활명품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몰스킨 수첩, 빌링햄 카메라 백, 파바카스텔 연필, 비스콘티 만년필, 트렉스타 등산화, 스톡 오르가닉 자전거, MET 헬맷, 짖조 삼각대, 스티클리 의자, 아이씨베를린 안경, 에센바흐 돋보기, 라시 외장 하드디스크, 교세라 세라믹 칼, 모리스 엔진오일, 콘테사 의자, 3M 포스트잇 · 홀더, 콜맨 휘발유 버너, 필립스 아키텍 면도기, 오피넬 접이식 칼, 미군용 수통 컵, 키커랜드 휴대용 술병, 샘소나이트 출장가방, 레더맨 휴대용 공구, 오트립 색, 가민 휴대용 내비게이션, 트로이카 미용세트, 전기장판, 브라이틀링 내비타이머, 미로 휴대용 주전자, 테벤 콘센트 타이머, 남궁산 장서표, 아르마니 점퍼, 헤이스 앵클웨이트, 제주 위미 오렌지, 원주 한지, 네틀 천연 직물, MSD 스피커, 민트 오디오 시스템, 킴불스 서류가방, 심플휴먼 쓰레기통, 쓰리세븐 손톱깎이, 올림푸스 카메라, 코르키 와인 따개, 코지다운 이불, 예나글라스 유리잔, 루체플란 스탠드, 신와 철자, 마패드 가위, 장수막걸리, 을지로 골뱅이, 황남빵, 학화할머니 호두과자, 포커시스 벽시계, 바리고 온습도계, 싱거 51W51 미싱, 칼리타 황동포트, 비알레띠 모카포트, 자센하우스 핸드밀, 미란츠 7 프리앰프, 아리에타 진공관 앰프. 책의 마지막에는 친절하게도 이 생활명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루트까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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