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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09. 2024

조용헌 《조용헌의 사찰기행》

끊임없이 우리를 몰아 붙이는 현대를 잠시 잊고, 쇠로 된 나무에 꽃을 피

  무려 18년 동안 한국과 중국과 일본 3국의 600여개 사찰과 고택을 현장 답사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인들과 교류하였다는 조용헌이 국내의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체득한 역사와 그 속 인간들의 범상치 않은 기운에 대한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이다. 책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찰이나 암자는 다음과 같다. 선운산 선운사, 변산 불사의 방, 모악산 금산사, 두승산 유선사, 서방산 봉서사, 금강산 건봉사, 북한산 승가사, 불령산 청암사, 연암산 천장사, 익산 미륵사, 미륵산 사자사, 대둔산 안심사, 승가산 흥복사, 소요산 연기사, 지리산 칠불사, 서해 망해사, 임랑 묘관음사, 동리산 태안사, 오대산 상원사, 영구산 구암사, 도봉산 망월사, 수봉산 홍련암...


  “... 조선은 이씨 李氏 왕조이다. 이李자를 분삭하면 나무 목木에다 아들 자子이다. 나무가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씨는 목木에 해당한다. 이씨 왕조는 목木에 해당하는 왕조라서 목을 금하는 금金剋木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했다. 오행의 상생 상극 이치로 볼 때 금이 많으면 목 기운을 받은 이씨 왕조가 다치게 된다. 조선이 들어서면서 금체형국의 마이산을 ‘금을 묶어 놓는다’는 뜻의 속금산束金山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명도 그렇다. 원래 ‘금포金浦’라고 읽던 것을 ‘김포’로, ‘금해金海’를 ‘김해’로, 김씨 성을 ‘금’에서 ‘김’으로 바꾸어 발음하게 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 속한다. 음양오행적 세계관에서 볼 때 이씨 왕조가 금을 싫어한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유불선(유교와 불교와 도교), 문사철(문화,사회,철학), 천문·지리·인사라는 아홉 가지를 함께 연구하는 자칭 ‘강호동양학’ 장르를 개척 중이라는 저자가 보여주는 유연한 태도가 좋다. 사찰기행이라는 책의 제목에 맞추어 전국의 이름난 사찰들을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채집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려나가며, 동시에 우리들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어떤 맥락들을 파악하고 있으니 그것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사람도 관상이 있듯이, 산에도 역시 산마다 관상이 있다. 남자의 관상에서 포인트는 눈이다. 눈에서 그 사람의 아이큐와 정기가 뿜어져 나온다면, 산의 관상에서 포인트는 바위와 암벽이다. 바위와 암벽에서 그 산의 정기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바위와 암벽이 많이 노출되어 있을수록 그와 비례해 정기도 강하다고 판단하면 대체로 틀리지 않다.”


  사주명리와 주역, 풍수와 관상 등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찰들이 몇 백년 혹은 천년 여 동안 간직하고 있는 기운의 실체를 (전혀 딱딱하지 않은) 대중적인 어조로 뿜어내고 있으니 쉽게 읽히기도 한다. 사고가 유연하니 다른 종교나 문화 등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가치관이 확고하니 옳고 그름에 대하여 말할 때는 확신에 차 있기도 하다.


  “선의 핵심은 그저 마음을 쉬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쉬는 것이 쉽지 않다. 자동차, 컴퓨터, 주식시세, 텔레비전이 우리를 쉬게 놔두지 않는다. 이것들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몰고 다닌다. 몰리지 않을 장사 있나 나와 봐라. 현대는 도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언변의 기저에는 결국 현대인들의 도통하기 힘든 삶이 깔려 있다. 사찰의 기원을 통하여 드러나는 과거에 큰 깨달음에 이른 스님들, 사찰을 기행하는 동안 만나거나 그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깨달음의 이야기들도 그렇고, 그러한 수행을 돕기 위한 사찰의 자리잡음에 대한 탐구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 休去 歇去 鐵木開花 (휴거 헐거 철목개화, 철목개화라는 말은 중국 임제 선사의 어록인 <벽암록>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쓰레기 더미를 매립한 자리에 세우고 짓고 세우고 짓고를 반복하는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째서 기운 가득한 산 속 사찰을 향하여 아득한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책 속 스님은 ‘한 5년만 절 밖에 안 나가면’ 철목개화,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는데, 사무실로부터 떠나는 하루 이틀의 시간도 빠듯한 우리들에게는 마치 그림 속의 떡과도 같은 이야기이니 더욱 마음만 아득하다.



조용헌 / 조용헌의 사찰기행 / 이가서 / 350쪽 / 2005, 2011 (1999 <나는 산으로 간다>라는 제목으로 발간, 2005년 증보개정판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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