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에 취하여서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치에 다다를지니...
<양화소록>은 조선 초기의 문인인 강희안이 (시,서,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이라고 불리웠다) 작성한 원예서이다. <양화소록>은 강희안을 비롯하여 강회백, 강석덕 등 3대에 걸친 글들을 강희맹이 편집 간행한 총4권으로 이루어진 <진산세고>의 마지막 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옛 선인들이 가까이 두고 감상하는 꽃과 나무를 소재로 하여 그것을 제대로 재배하는 방법과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아!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 들이는 법을 모르면 안 된다. 건습과 한난을 알맞게 맞추지 못하고 그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죽을 것이니 어찌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랴? ...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養生)하는 법을 알았다. 이로 미루어 이치를 넓혀 간다면 무엇을 하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재배법과 이용법의 나열에 그치는 책은 아니다. 크게 나라의 쓰임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학문을 닦고 나라를 생각하는 일에 소흘하지 않았던 작가는 꽃과 나무를 논함과 동시에 그것을 기르고 보살피는 일을 사람을 대하는 일과 종종 비교한다. 그러니 정해진 바에 따라 꽃과 나무를 가꾸듯이 이치에 맞게 삶을 살아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잔뜩 담겨 있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국화 뿌리는 물을 가장 싫어하니 물을 주지 말고 뿌리 곁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종이를 잘라서 한쪽 끝은 국화 뿌리를 싸감고 한쪽 끝은 물그릇에 담아 두면 자연히 물이 스며들어 뿌리가 촉촉하게 젖는다.” - <화목의기> 중
물론 원예서라는 본질에도 충실한 편이다. 그래서 어느 시기에 파종을 해야 하는지, 접을 붙이는 방식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화분을 선택해야 하고 또 어느 시기에 분갈이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종 원예 관련 책자들을 인용한다. 그 중에는 위와 같이 그럴싸한 물주기 방식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엣사람들의 운치가 느껴진다.
“... 초봄에 꽃이 피거든 등불을 켜 놓고 책상 위에 난분을 올려 놓으면 잎의 그림자가 벽에 박혀 야들야들한 게 구경할 만하여, 글을 읽는 데 졸음을 쫓기도 한다...”
꽃과 나무의 활용 또한 운치가 넘친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위의 문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진다.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난 화분 하나, 그리고 등불 아래로 펼쳐 놓은 책을 들여다보는 선비, 난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 그리고 그 흔들리는 그림자를 벗 삼아 졸음을 쫓으며 글을 읽어 내는 선조들을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이 단아해지는 것이다.
“기이하고 고아한 것을 취하여 스승을 삼고, 맑고 깨끗한 것은 벗을 삼고, 번화한 것은 손님을 삼았다. 사람에게 양보하려 하나 사람들이 버리기 때문에 스스로 유유하게 살아감을 다행하게 생각한다. 모든 기쁨 · 성냄 · 걱정 · 즐거움과, 앉고 눕고 하는 것을 이 병군에 붙여 자아를 잊고,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러 갈 뿐이다.”
노송(老松), 만년송(萬年松), 오반죽(烏班竹), 국화(菊花), 매화(梅花), 혜란(惠蘭), 서향화(瑞香花), 연화(蓮花), 석류화(石榴花), 백엽(百葉), 치자화(梔子花), 사계화(四季花), 월계화(月桂花), 산다화(山茶花:冬柏), 자미화(紫薇花:百日紅), 일본 척촉화(躑躅花), 귤수(橘樹), 석창포(石菖蒲) 등의 꽃과 나무들 그리고 이것들의 재배법과 더불어 인간으로서 제대로 길러지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생각들이 지긋하게 담겨져 있는 책이다.
강희안 / 이병훈 역 / 양화소록 (養花小錄) / 을유문화사 / 197쪽 / 1973, 2009 (1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