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야박하게 나아가는 현대의 삶 속에서 더욱 품어야 하는...
정약용의 책들을 몇 권 사놓았는데 손도 대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비교적 작은 책을 한 권 사게 되어 이렇게 읽을 수 있었다. 정약용은 1762년 생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였으나 1800년 정조의 죽음 이후 당파 싸움의 와중에 밀려 1801년부터 기나긴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유배 생활은 1818년 그의 나이 57세에 이르러 끝이 났고, 1836년 75세의 나이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천수를 누렸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경제서와 함께 총 503권으로 이루어진 <여유당전서>를 완성시킨 정약용은 18세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여기서는 서정적 성격의 산문들을 주로 뽑았다. 그러다 보니 주로 다산 생애의 전반기 사환시절의 문장들과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이 주가 되었다. 그것은 다산의 논설문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제에서도 다산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다산의 또 다른 면을 독자가 발견하고 좀 더 인간적으로 다산을 가깝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책은 그러한 정약용의 방대한 저서들에서 골라낸 산문을 그 원문과 함께 (원문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다, 물론 볼 엄두도 내지 않았지만....) 싣고 있다. 엮은 이의 의도대로 자신의 일상에서 우러난, 그러니까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생각들과 자신의 자식들을 향하여 아비로서의 간곡한 조언 내지는 협박이 골고루 실린 작품이다.
“정사년(1797) 여름... 형제 네 사람과 친척 서너 사람이 함께 천진암으로 갔다. 산에 올라가니 초목이 빽빽한데 산 속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코를 찔렀다. 온갖 새들이 어울려 노래하는데, 곡조가 맑고도 매끄러웠다. 서로 어울려, 걷다가 새 소리를 듣다가 하니 몹시 즐거웠다. 절에 도착해서는 술 한 잔에 시 한 수 씩 지으며 날을 보냈다. 사흘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왔으니 얻은 시가 이십 수에다, 냉이, 고사리, 두릅 따위 맛본 산나물이 대여섯 가지였다.”
하지만 정약용의 산문과 함께 뒤에 실린 해제를 읽다보면 가벼워 보이는 그의 산문을 그저 가볍게만 읽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천진암의 산나물, 이라는 제목이 붙은 산문을 볼라치면 형제들과 어울려 놀다가 산에 있는 암자로 들어가고 그곳에 이르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의 정취가 유유자적 등장하지만, 해제에 실린 아래와 같은 실상을 알고 나면 또 다른 심상과 조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물처럼 얽힌 일상이 사방에서 조여오는 듯할 때가 있다. 세상이 온통 내게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 같은 순간, 자칫 그대로 도마에 오른 물고기 신세가 될 것 같다. 그런 때, 유난히 산수가 아름다운 고향마을에서 피붙이들과 고기잡이하고 산나물 캐며, 킬킬거리고 지내는 며칠 - 상상만 해도 숨통이 트인다... 1797년 다산 36세 때의 작품이다. 여름이라 했으니, 한창 천주교 시비에 휘말려 있을 때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도 단순히 독서를 하라는 말이 아니라, 아비가 큰 아비와 유배를 당하고 또 다른 큰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기까지 한 가문의 일원인 너희들이 독서마저 하지 않는다면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대우를 받을 것인지를 거의 협박조로 쓰고 있다. 스스로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자라는 위무로 유배 생활을 버티는 정약용이었으니 그 아들들 또한 자신과 같은 간곡한 심정을 가져주기를 바랬음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 잘 되는 집안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존중을 받는다. 그러나 폐족이 무식하면 더욱 가증스럽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이 비루하게 여기는 것도 슬픈 일인데, 지금 너희들은 게다가 스스로 천해지고 스스로 비루해지니 이것은 슬픈 처지를 스스로 만드는 것일 따름이다.”
책에 실린 산문들은 뒤로 갈수록 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앞부분의 산문들은 정약영의 다른 글들이 주는 (읽지 않았음에도 선입견으로 갖게 되는) 어떤 무게감으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지나쳐 너무 가볍다고 여겨지지만 유배의 생활이 깊어지는만큼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는 후반부의 글들에는 앞선 이로서의 후학, 더불어 아비로서 자식들을 위하여, 라는 부성이 더해져 읽는 맛이 난다.
“...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시비是非)’이라는 저울이고 하나는 ‘이익과 손해(이해利害)’라는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 제일 고급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 그 다음이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급이 그른 것을 추구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통각에 이를만한 큰 글은 아니지만 유배지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학구열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학자의 글을 읽는 일이 나쁘지 않다. 빛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일에 지칠 때 한번쯤 읽을만하다. 그렇게 잠시 뒤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숨돌릴 틈을 만들 수 있게 되는 듯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잘 살고 싶다는 그리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이럴 때 읽어야 한다.
정약용 / 박무영 역 / 뜬세상의 아름다움 / 태학사 / 298쪽 / 2001,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