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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19. 2024

최웅철 《생활명품》

잊혀지고 사라지기엔 아까운 우리들 생활 속의 명품 일람...

  명품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와 함께 명품을 향한 열망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되는 명품이란 것이 하나같이 물을 건너온 것들이니, 그로 인하여 생기는 경제적 정서적 누수가 만만치 않다. 책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의 것, 우리의 것이지만 능히 명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는 꽤 그럴싸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지나친 명품들에 대한 이야기이니 꽤 솔깃하다.


  “.. 청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닌 분청사기의 묘한 색... 사실 분청하기를 만들 때 처음부터 이런 색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가 무너지고 유학을 내세우는 조선이 건국되면서 불교 문화의 상징인 청자에서 유교 문화의 상징인 백자로 도자기의 주류도 바뀌었다. 시대는 백자를 요구했지만 완벽한 백자를 만들어낼 기술은 아직 부족했기에 아쉬운 대로 청자에 흰 칠을 해서 백자의 맛을 즐긴 것이 분청사기였다. 하얀 분토를 바른 청자라 해서 이름도 ‘분청(粉靑)’이라 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책은 공예, 회화, 건축, 음식의 네 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챕터에 <공예 - 달항아리, 분청사기, 이도다완, 옹기, 유기, 소반, 사방탁자, 조각보, 한지, 삼베와 모시>, <회화 - 세한도, 인왕제색도, 몽유도원도, 책거리, 윤리문자도>, <건축 - 소쇄원, 부용정, 윤선도, 다산초당, 독락당>, <음식 - 순채, 어란, 굴비, 참게장, 전주비빔밥, 지리산 잎차, 장, 신선로, 황복>이라는 명품들이 설명되고 있다.


  “... 이 까다롭고 번거로운 과정 속에 유기의 매력이 있다... 이런 예민함 때문에 금세 색이 변하고 자주 닦아줘야 했지만 그만큼 음식에 유해한 성분이 있는지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전에 신부의 혼수품 1호가 놋쇠 요강과 세숫대야였던 것도 매일 사용하는 요강이나 세숫대야의 색이 변하는 것으로 몸의 작은 변화까지 스스로 살펴 관리하라는 친정어머니의 배려일 것이다.”


  그 안에는 주로 우리 선조들의 생활 속 지혜가 깃들어 있고, 그러한 생활 속 지혜가 곧 저자가 말하는 명품의 초석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쇠퇴하였다가 다시 번성해지는, 그러니까 유행을 타는 듯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금 그 명성을 회복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에 되살려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명품들도 있다. 이런 작은 명품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읽힌다.


  “... 굴비라는 이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에 고려 인종 때의 세도가였던 이자겸이 등장하는데, 이자겸이 영광으로 유배를 왔다가 굴비 맛에 반해 임금께 굴비를 진상하면서 ‘정주굴비(靜州屈非)’라고 적어 올린 것이 그 유래다. ‘정주’는 당시 영광의 지명이었던 정주를 쓴 것이고, ‘굴비’는 굴할굴(屈), 아닐비(非) 자를 적어 ‘굴하지 않는다’, 즉 누명을 쓰고 귀양을 왔지만 굽히거나 꺾어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네 개의 챕터 중에서는 음식 파트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음식의 유래나 그 음식의 어마어마한 레시피가 눈길을 잡아 끈 것이다. 생활과 명품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뉘앙스의 두 단어로 만든 제목 ‘생활명품’에서도 알 수 있듯 작은 하찮아 보이지만 하찮지 않은, 과거의 것으로 잊혀지고 있지만 그러지 말아야 할 것들을 향한 저자의 애정이 소소하게 드러나 있으니 읽을만 하다. 


  “... 그중 하나가 참게장으로, 만드는 방법이 재미있다. 꼬물꼬물 살아 있는 참게를 커다란 항아리에 넣고 쇠고기 살코기 한 근을 넣어둔다. 다음날 뚜껑을 열어보면 쇠고기는 사라지고 없는데, 참게들이 다 먹어 치운 것이다. 그렇게 쇠고기로 배를 채운 참게들을 깨끗하게 씻어 차곡차곡 항아리에 잰 다음, 팔팔 끓여서 식힌 간장을 부어준다. 이때 간장은 조선간장을 써야 참게장 특유의 심오한 맛이 나는 법이다. 간장을 붓고서 3~4일 훙 간장을 따라내고 이 간장을 다시 끓여 식혀서 부어주는 과정을 서너 차례 반복해야 참게장이 완성된다...”



최웅철 / 생활명품 / 스토리블라썸 / 217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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