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경계를 걸으며 행복하였던 자타공인 회색분자의...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한 이윤기의 유고 산문집이다. 애초에 번역가로만 알고 있었던 (이윤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번역자이다) 그가 쓴 하늘의 문이라는 세 권짜리 소설을 보면서 (사실 그는 소설로 신춘문예에 등단한 작가인데도) 놀랐고, 그 후 그의 몇 편의 소설 그리고 산문집들을 찾아 읽고는 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벌써 십여년 전이다. (한 달 전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개정판을 다시 샀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 나는 신학대학 출신인데다 예수님의 향긋한 말씀을 너무 좋아해서 스님들로부터는 예수쟁이로 몰리고, 부처님과 선불교를 좋아해서 기독교인들로부터는 ‘절집 처사’로 몰려 본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경상도 사람인데 전라도 문화를 너무 좋아해서 동창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놈’,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무신경한 경상도 놈’으로 낙인 찍혀 본, 참 억울한 사람이다. 영어 책 번역을 생업으로 삼은 데다 미국에 오래 머물렀던 탓에 한글 순혈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 놈 똥구멍 빨다 온 놈’, 진보적인 어문학자들로부터는 ‘언어 국수주의자’로 몰린 적이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다.”
그의 산문집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에서 감명을 받은 바, 이윤기는 스스로를 회색분자라고 부르며서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당당해 했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자타공인 회색분자라 칭한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며 다른 영역을 향해 배타적 시선을 갖는대신 그는 자신의 근원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근원들을 향하여 강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작가는 천성적으로 자유로운 인문주의자의 성향을 버릴 수 없었으리라.
“홀로 남은 하리가 걱정스러웠다. 8년을 마주 보고 살았으니 개들이 슬픔을 안다면 많이 슬플 터였다. 하리가 소리를 따라 죽으면 어찌 할까, 싶었다. 그러나 하리는 괴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아함경』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렇지. 괴로움[苦]은 집착[執]에서 오는 것이거니. 집착하지 않는 하리에게 무슨 괴로움이 있으랴.”
더불어 그는 스스로를 무언가에 얽어매려는 마음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그가 평생을 바쳐 신화의 연구에 매진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에 얽매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얽매이지 않았으니 자신의 작업을 즐거이 수행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고, 마찬가지로 번역자와 소설가와 신화학자라는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었으리라 여겨진다.
“... 눈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상태. 확실하게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나는 앎과 모름의 가장자리를 서성거릴 때 행복을 느낀다.”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 세상 지식의 가장자리를 서성거리며 행복을 느꼈던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책은 여전히 책장에 남아 있다. 죽고 십년 후에도 그 사람의 책이 서점의 가판대에 놓여질 수 있을 때 그를 진정한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던가.장담컨대 십여년이 지나도 이윤기의 이름 석자가 버젓한 그리스로마신화는 여전히 가판대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시간의 행복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리라.
이윤기 / 위대한 침묵 / 민음사 / 177쪽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