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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23. 2024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신과 다윈의 시대》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사이의 극복되기 힘든 간극, 그 과학과 종교의 대리전

  지식 e를 읽으면서 좋은 일은 또다른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식 e를 통해 얻은 얄팍한 지식을 좀더 두텁게 만들고 싶다면 지식 e의 지면에 소개 되어 있는 책들을 살펴본 후 적당한 책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책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읽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식 e에 소개된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과 거의 같은 시기 같은 생각을 하였던 생물학자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에 대한 꼭지에 붙어 있는 책소개를 통하여 이번 서적을 구입한 것이다.


  사실 신으로부터 인간이 독립을 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바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일 것이다. 그동안 조물주인 신의 손끝에서 조물조물 만들어진 것이라 여겨지던 인간이 그저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뿌리를 둔 어떤 생명체로부터 차차 진화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지만 결국 우리들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론은 그 이론이 처음 나왔던 그 시기부터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그리고 진화론의 반대편에는 주로 창조론이 있었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신밖에는 없고 그러하니 인간이든 지구이든 우주이든 그것의 창조에는 신의 창조라는 개입밖에는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창조론이 과학이 아닌 종교로 치부가 되면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지적설계론이다.


  『... 진화론 쪽에서는 “모든 생명 현상을 자연주의 관점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의 신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왜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에 하나님, 절대자, 아니면 설계자를 집어넣는지 묻습니다. 그 물음에 대해 지적설계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과학적인 활동과 연구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설명 못하는 부분은 설명 못할 수 있다.”라고요. 그 설명 못하는 부분을 제외시켜 버리고 말하는 것, 그것이 ‘실체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입니다.』


  이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바로 그 ‘실체를 바라보는 잘려진 관점’의 해결을 위해서는 지적 설계자라는 것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 지적 설계자가 신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창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무엇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진화론이라는 과학이 가지는 한계에 지적설계론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진화론자와 지적설계론자들 양측의 인터뷰를 번갈아 싣고 있는 책을 보는 동안 오히려 지적설계론자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난맥이 고스란히 읽힌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비과학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는 상황에서 진화론이라는 과학이 가지고 있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요소들을 향하여 비과학적이라고 한다는 점이나, 그렇기 때문에 그 비과학적인 요소들을 풀기 위하여 지적설계자라는 비과학적인 요소를 투입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점, 그러면서도 동시에 지적설계론이라는 것은 종교와는 상관없는 과학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점 등은 요령부득이다. 


  “저는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상어와 호랑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엄청난 강적이지만 상대방의 영역에서는 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과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논박할 수 있다며 종교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종교는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스티브 존스 (진화학자)


  어떻게 보면 기독교가 가지는 배타적인 의식이 지식설계론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종교에 위배되는 것은 과학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면에서만 보아도 다윈의 진화론은 신과 인간과 동물을 서열화시키는, 그리하여 신의 판단이라는 이름하에 주관적인 판단으로, 나와는 다른 무엇들을 핍박하는 종교에 비하면 얼마나 선한 것인지, 바로 이런 부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의 핵심 이론 중의 하나인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이론에 의하면 갖가지 생명체들은 한 뿌리에서 나무의 줄기가 뻗어나가듯 한 조상에서 각각 다른 계통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인간은 수많은 가지 중 하나의 끝에 있는 진화의 최종 단계인 생명체일 뿐이며, 다른 모든 생물들도 각자 가지 끝에 있는 진화의 최종 단계인 생명체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최종 산물로서 현존하는 생명체는 서로 비교하여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이렇듯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다는 다윈의 생각은 그야말로 인간에 관한 인류의 인식 체계를 그 근원부터 바꿔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 (정은성, 김지연, 서준, 최주은) / 신과 다윈의 시대 / 세계사 / 251쪽 / 2010 (2010)



ps. 종교에 대한 사회생물학 연구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의견이 있어 옮겨 본다. 종교의 득세와 관련해서 의미있는 의견이라고 보여진다. “인류의 종교 또한 계속 진화해왔다는 그의 주장은 흥미롭다. 무조건적으로 순종을 하는 유전자 집단은 그 집단의 정체성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집단은 개인에게 힘이 되고, 구성원으로서 가지게 되는 삶의 목표는 신성한 계약이 되어 그 개인의 안내자가 된다. 인간은 그러한 계약을 이해가 쉽고 모순이 적은 이미지와 결부시켜 구체적인 대상을 만들어내고 형식화된 의례를 통해 그 대상을 의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신화를 만들어내 부족에게 전달한다.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 종교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종교성을 가진 집단은 다른 집단 보다 희생적이고 단결력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성이 없는 집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높다. 따라서 종교성을 가진 집단은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성을 가진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많이 태어나게 되고, 이것이 현재의 종교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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