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다큐로서 작가인 스스로를 끌어들이는 경지에 이른 아멜리 노통브의
“... 이라크에 온 이후로 내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이 늘었습니다. 일 년에 17킬로그램씩 찐 셈이죠.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앞으로도 18개월을 여기에 더 있어야 하니까요. 그 기간 동안 아마 30킬로는 족히 불어나겠죠... 100킬로그램은 한 사람분의 몸무게예요,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바그다드에 있게 된 이후로 내게는 거대한 사람 한 명이 달라붙어버린 겁니다. 이곳, 바그다드에서 내게 온 사람이니만큼, 나는 그 사람에게 세헤라자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번 소설은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가 바그다드의 미군 멜빈 매플과 2008년 12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주고 받은 편지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인 아멜리 노통브가 실명으로 직접 등장하는데, 그러니까 대략 페이크 다큐 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에 되도록 많은 답장을 쓴다는 원칙을 가진 작가는 엉뚱하게도 전쟁의 한 복판에 있는 외국 군인으로부터 온 편지, 그것도 전쟁과 비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편지의 내용에 솔깃하게 되고, 2년여에 걸쳐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이다.
그렇게 처음에는 아마도 미국의 부시가 행한 악행은 그렇다치고, 그러한 악행을 실질적으로 적국민들에게 자행한 파병 미군 병사들 또한 희생자들이라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비만증에 걸린 듯 나날이 몸집을 불리우는 멜빈 매플을 통해 고발하는 사회적 소설쯤으로 여기고 읽었던 것 같다. (실제로 아멜리 노통브는 이 소설을 파병 미군들 사이에 비만증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이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간다.
“... 꾸며낸 나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려면, 밖에 있는 누군가의 지지를 받아야만 했어요... 당신 덕분에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갖게 되었지요. 인간으로서의 가치. 당신의 정신 속에서, 나의 삶은 몸을 갖게 되었어요. 당신의 시각을 통해,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이 부분 이후로는 강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구매하여 읽으실 분이라면 더 이상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멜리 노통브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세헤라자드를 품에 안은 미군 병사, 중간에서 다리까지 놓아가며 전쟁과 인간의 육체 사이의 괴리를 예술화시키도록 추동하기까지 하였던 그 미군 병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밝혀진다.
이제 덩그러니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몸무게를 가지고, 부모님의 세차장 한 켠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프로그래밍 하는, 그렇지만 ‘생명의 한 형태’를 가진 남자이다. 그리고 그를 찾아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아멜리 노통브, 그리고 마지막 순간 도대체 자신이 지금까지 무슨 행동을 한 것인지 심각한 의문에 빠지면서 스스로를 곤혹스럽게 만들면서까지 그와의 만남을 회피하려는 아멜리 노통브가 남게 된다. 그렇게 편지 안이 아니라 편지 바깥의 이야기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난다.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역 / 생명의 한 형태 (Une forme de vie) / 문학세계사 / 190쪽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