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어슬렁 전장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더욱 돋보일 수 있었던 인간의
“덴쇼 18년(1590년)... 간토 지역의 자그마한 오시 성에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가 몰아친다. 여느 성과 달리 호수 위에 지어진 구조 때문에 100년 넘게 외부 세력의 침입을 꿋꿋이 이겨냈지만,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도요토미 진영의 공격은 도무지 버텨낼 재간이 없다. 뾰족한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히데요시의 오른 팔’ 이시다미쓰나리가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성 앞까지 들이닥친다. 오시 성의 성주 나리타 우지나기는 별 수 없이 히데요시의 군대에게 항복할 계획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천하통일 하던 무렵을 배경으로 삼은 일종의 역사소설이다. 오시 성의 성주 가문인 나리타의 역사를 기록한 나리타가를 원전으로 삼아 재구성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당시 나리타의 성주였던 우지나가가 혼조 가문의 성으로 출정한 이후, 성주의 역할을 대리하였던 나리타 나가치카, 일명 노보우라고 불리던 한 사내의 전설과도 같은 무용담이기도 하다.
“‘노보우 님’이란 ‘데쿠노보우’(바보, 멍청이, 남이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옮긴이)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그냥 ‘노보우’라고 부르기는 껄끄러워 형식적으로 ‘님’을 붙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 사내가 참 심상치 않다. 사촌 동생에게 성주 자리를 물려준 채 큰 키로 어슬렁거리며 영지에 있는 농부들의 농사일을 거들려다 실수만 하고 마니,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깔보는 귀족 자제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그렇지만 성주의 딸이며 출중한 외모와 무수 실력을 갖춘 가이히메는 이 사내를 흠모하고, 성의 내노라하는 장수들이 그 주변에서 말 달리는가하면, 영지의 농부들은 격의 없이 이 사내를 대한다.
“단바는 나가치카의 언동에 끊임없이 실망해왔지만, 한편으로 그 키 큰 사내가 지닌 흡인력을 매우 귀한 재능으로 여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즈미가 나가치카에게 허물없이 말을 걸고, 유키에는 나가치카와 이야기를 하면 점점 신이 나서 말이 끝도 없이 길어진다. 가신들이나 농민들은 나가치카를 업신여기지만,오히려 그 대문에 숨김없이 제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 엉뚱한 사내의 즉흥적인 말 한 마디에 오시 성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출정 중인 성주 나리타 우지나가의 항복 의도와는 상관없이 노보우라고 불리우던 사나이 나리나 나가치카는 전쟁을 선언하고 만 것이다. 물론 그 전쟁 선언은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온 나쓰카 마사이에의 오만방자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나리타 나가치카가 보여주던 허술한 듯 듯하지만 심지가 곧은 품성, 그 품성으로부터 비롯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사람을 발로 걷어찬다.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조롱하고 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난 싫어. 그런 건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그리고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몇 십 배 차이가 나는,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노보우라 불리우던 사내는 멋지게 성을 지켜내는 성과를 올린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성주를 대리하던 나리타 나가치카라는 사내가 보여준 멋진 인간의 모습에 다 같이 반하고 만다. 일본 열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불경한 전쟁의 기운 그 한 가운데를 어슬렁거리면서도, 불가피하게 극적인 순간에 비로소 인간의 조건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이 사내의 행보가 스피디한 전개와 유머러스하게 각색된 사건들 속에서 흥미진진하다.
와다 료 / 권일영 역 / 노보우의 성 (のぼうの城) / 들녘 / 358쪽 / 201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