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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마녀의 한 다스》

이단과 비주류와 약자를 향한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선량한 애정과 관심..

by 우주에부는바람

다른 문화와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문화에 미래는 없다. 그것은 계속해서 근친교배를 통하여 혈통을 이어가는 경우 결국 혈통의 유지조차 힘들어지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동물계에서도 순종의 경우 믹스종에 비해 건강 상으로는 더욱 약하지 않은가)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마녀의 한 다스>는 어쩌면 문화의 믹스야말로 건강한 미래의 문화를 위한 기본 조건임을 은근하게 설파하는 책일런지도 모르겠다.

“쓰지 유미는... ‘사회의 격동기를 맞이한 나라에서는 어느 시대건 번역이 왕성했다’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그것은 이문화를 포용하는 새로운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이, 나아갈 길을 잃은 사회나 문명에 돌파구를 열어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리라... 이단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구멍을 내준다. 늘 보아온 풍경을 달리 보게 하고, 신선한 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의나 상식으로 여겨져온 것을 뒤집는 위협도 숨기고 있다.”

산문집의 제목인 ‘마녀의 한 다스’는 이단으로 불리우는 존재인 ‘마녀’ 그리고 이 마녀의 한 다스는 12가 아니라 13이라는 설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비상식적인 존재인 ‘마녀’, 그 마녀가 기준으로 삼는 일반적이지 않은 ‘13=한 다스’라는 개념을 묶어서 우리들의 갇혀 있는 문화에 대한 시각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제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자기와 자민족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생명체의 자기보존 본능에서 비롯되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배려’에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상대방이 스스로 말하게 한 후 거기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보이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작가는 주류에 매몰되어 있는 편향된 시각 그리고 철저하게 자국 중심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마뜩찮게 생각한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마뜩찮음을,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일본 사회를 향하여 용감하게 피력한다. 영미권에 집중되어 있는 일본인들의 사대주의적인 시각을, 자국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호소하면서도 한반도 강점처럼 자국이 저지른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는 딴청을 피우는 이상한 사고를 기꺼이 비판한다.

(작가의) 이 마땅한 사고의 기저에는 러시아어와 일본어라는 두 개의 언어를 오가는 통역사라는 자신의 직업적 마인드가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두 개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통역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이종 문화의 결합이라는 근본이 작가에게 올바른 사고의 기원이 되고 있다. (물론 모든 번역자나 통역자가 이처럼 올바른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이해력도 떨어지고 단어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괴롭히니 다른 우등생들이나 강사들을 짜증나게 한다. 첫 사흘 정도까지 그들은 수업 방해꾼에 열등생이라는 눈초리를 받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그들 덕분에 수업이 보다 깊이 있고 폭넓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질문은 근원적이며 철학적일 정도다. 결국 우등생들은 자신들의 이해력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깨닫고 부끄러워하게 되고, 강사는 강사대로 지금까지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문제에 당면해 학문적으로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비주류를 보듬는 주류와) 주류를 풍성하게 하는 비주류를 애호하는 작가는 끊임없이 조금 약한 것 그리고 조금 늦은 것들에 대해서도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효율을 만능으로 여기는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낸다. 조금 늦더라도 또박또박 자신이 밟고 지나가는 길을 눈여겨 볼 수 있는 태도가 결국은 깊고 융숭한 결승점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말이란 그 자체가 이미 보수적인 숙명을 띤 존재다. 우리가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쓰는 낱말은, 그 어휘도 문체도 문법도 머나먼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시점에 있던 언어공동체의 가치관을 싫든 좋든 받아들이게 된다.”

스스로의 한계를 분명하게 아는 자만이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숙명적으로 보수적인 말을 구어와 문어로 동시에 이용하는 작가에게서 끝모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니 지적이면서도 선량하기 그지 없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같은 유쾌함을 잃지 않는 이 작가의 글들을 읽는 작업은 (그녀의 많은 책을 읽다보면 많은 내용이 되돌이표가 붙은 음악을 하듯 되풀이됨을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즐겁다.


요네하라 마리 / 이현진 역 / 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 279쪽 / 2007, 2010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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