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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차이와 사이》

세상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차이'를 살펴볼지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암투병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또 말로 전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요네하라 마리의 강의집이다. <사랑의 법칙>, <이해와 오해 사이>, <통역과 번역의 차이>, <국제와와 글로벌리제이션 사이>라는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큰 의미에서 전달자와 수신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통역사라는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하고 있어 구체적이다.


“보통은 인간 사회에 사는 이상 자신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나도 속으로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구에게든 무난하게 대응한다. 적당히 인사하고 적당히 인간관계를 맺지만, 마음의 소리에 솔직히 귀 기울이면 세상 남자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A는 꼭 자고 싶은 남자, B는 자도 괜찮을 것 같은 남자, 그리고 C는 절대 자고 싶지 않은 남자. 돈을 준다고 해도 싫다. 절대 싫다...”


첫 번째 챕터인 <사랑의 법칙>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사이를 보여주는데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취향을 (결혼도 한 번 하지 않은 여사께서) 직접 드러내기도 한다. 더불어 ‘가능한 한 많은 암컷과 섹스를 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지상과제인’ 샘플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남성과 ‘가능한 우수한 수컷과 섹스를 해서 질적으로 우수한 자손을 남기고 싶은’ 여성의 차이를 각종 자료를 동원하여 설명한다.


“... 신이 갑자기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어떻게 말할지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나라면 제일 먼저 ‘미인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생각하는 미인과 신이 생각하는 미인이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옛날 풍속화의 미인처럼 볼이 통통하고 실처럼 가는 눈으로 만들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모나리자 같은 미인도 조금 곤란한데, 가장 무서운 것은 피카소 식의 미인이 되는 것이다. 신이 피카소와 같은 미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두 번째 챕터에서는 <세 가지 소원>이라는 동화를 거론하며 통역사인 자신이 갖는 이해 그리고 오해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통역이라는 것은 이처럼 오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처럼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자국어로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외국어로 된 것이든 모국어로 된 것이든 그것을 내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자신이 통역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모든 사람이 함께 이해하여 다같이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음 또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단어는 700개 정도면 충분하다. 문형은 다섯 가지면 족하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술회를 하고 있다. 더불어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 필요한 것, 그리고 단순히 외국어를 익히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동시통역사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동시통역사라고 해서 외국어와 모국어간의 완전한 의사 전달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러한 완벽한 의사 전달로부터 자유로와질 때 오히려 동시통역사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 ‘국제화’라 할 때 일본인이 말하는 국제화는 국제적인 기준에 자신들이 맞춘다는 의미다... 미국이 말하는 글로벌리제이션은 자신들의 기준을 세게에 보편화한다는 의미다. 자신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들은 정당하고 정의롭다. 자신들이 법이다. 이것을 세계 각국에 강요하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네 번째 챕터에서 작가는 국제화라는 미명하에 스스로의 문화를 잃고, 언제고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것에 맞추어 가려는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해 비판한다. 영어에 치우쳐져 있는 동시통역사 시장의 상황 또한 이처럼 잘못된 국제화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더불어 하나의 제1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제2외국어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고 있다. (책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라는 수업이 있었던 것이 떠오른다.)


강의를 발췌한 것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온전히 산문으로 작성된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재미가 덜하다. 또한 그간 여러 산문집을 통하여 이야기한 통역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겹치기로 출연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간간히 찾아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으로 자신의 생명이 스러져가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사고하며,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남은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흔적이 느껴져서 중간에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요네하라 마리 / 홍성민 역 / 차이와 사이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米原万里の「愛の法則」) / 187쪽 / 20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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