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지 않은 '여행의 원석'을 통하여 굴절된 문명의 시선을 바로 펼 수
작가 스스로 지금까지 피해왔던 (책의 출간년도는 2010년이다, 그러니 그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여행의 일상에서 겪었던 단순하고 즉물적인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모은 (월간잡지인 <GEO>와 <PLAYBOY>지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산문집이다. 물론 사진도 섞여 있고, 보기에 좋다. 그의 사진은 꾸미기에 능하지 않은데, 그 사진 자체가 스스로 ‘여행의 원석’이라고 밝힌 이러한 ‘즉물적인 사건들’을 닮아 있는 것도 같다. (특이한 점은 그가 모델을 기용하여 야생으로 끌고 가서 찍은 사진조차도 어떤 즉물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힌두의 신들은 대체로 기형이다. 불구의 육체로 태어난 남자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에 의해 일반 백성과는 다른, 즉 신에게 좀 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며 성직에 참여한다.”
또한 후지와라 신야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가 문명화된 시각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차별을 반대한다는 우리의 차별 반대 행위조차 문명화된 시선인 것은 아닌지 비판한다. 그러니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계급 제도라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향하여 들이대는 반인권이라는 우리들의 잣대가 품고 있는 어떤 비뚤어진 우월의 함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오늘의 현실은 극동의 일본이라는(비록 불황에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부자나라에 단물(돈)을 빨러 진딧물 같은 패거리들이 잔뜩 몰려온 즉물적인 사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아무런 흥미도, 미련도 없다. 다만 일본인의 지갑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이런 사랑이 없는 만남에서 풍요로운 크레올(creole 민족혼합)이 발생할 리 없다. 원하는 대로 돈을 손에 쥐게 되면 그들은 미련 없이 일본을 떠난다. 그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가 집을 짓고 가전제품을 사들이고 벼락부자 행세를 하면서 현지의 생활환경을 파괴하는 데 앞장선다.”
동시에 반대로 우리들이 흔하게 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온후한 시선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그들은 그저 자본의 논리에 밀려 부자나라에 들어온 것일 뿐이고, 그들은 그저 이처럼 문명 파괴적인 자본을 흡수하고 그것을 제 나라로 가져가 그 전통의 문화를 피폐화시키는데 한 몫 하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 전부이다, 라고 비꼬기도 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동조할 수 없으나, 또한 아예 틀린 생각이라고 버릴 수도 없으니 좀더 생각해볼 일이다.)
“셔터는 염불과 비슷한 데가 있다. 촬영자가 ‘기도’하면서, 또는 ‘소망’하면서 셔터를 누르면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 눈앞의 대상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언어라는 전달 수단에 도움받지 않고서도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가의 사진과 글은 여전히 흥미롭다. 날 것을 바라보지만 (후지와라 신야라는) 자신만의 필터를 통하여 걸러낸 결과물인 그의 사진과 글은 때때로 야만적이지만, 문명인으로서 거부하기 힘든 야만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올곧은 시선에 사로잡힌 야만은 문명에 찌든 우리들의 시선이 오히려 굴절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지적은 많은 부분 옳다. 문명을 야만으로 돌려 놓으려 하지는 않지만 야만에 빚지고 있는 문명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후지와라 신야 / 김욱 역 / 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 (ショットガンと女) / 청어람미디어 / 214쪽 / 2010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