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외 《남의 속도 모르면서》

정숙하지만 이중적인 우리들의 성적 발화에 대한 태도를 향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여덟 명의 (우연히도) 남자 작가들만이 쓴 여덟 편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기획 소설집이다. 아마도 출판사로부터 발의되었을 이 기획에 응한 것은 모두 남자들이었고, 이들의 나이 또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자들로 한정되어 있다. 비교적 정숙한, 그러나 교묘하게도 이중적인, 우리들의 성에 대한 발화의 태도에 대한 본격적인 소설로 보이지는 않지만, 몇 편은 잘 읽힌다.


김종광의 「섹스낙서상 낙서나라 탐방기4」.

김종광의 율려국을 아주 좋아한다. 제주도 아래 어디메쯤에 있는 율려국에 섹스낙서상이라는 것이 있다니 앞으로는 더욱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물론 김종광은 김종광답기 때문에 그저 섹스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섹스낙서상을 통하여 작가는 우리 문학계를 요리조리 비꼬기에 여념이 없다. 생처음, 상많이, 확뚫린, 짱잘봐, 벼락녀라는 섹스낙서상 심사위원들의 대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조헌용의 「꼴랑」.

암에 걸린 늙은 남편과 그의 늙은 부인이 애태우는 스킨쉽이 우습지만 애잔하다. 손수레에 벤츠 마크를 붙이고, 카섹스를 따라하는 두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도무지 일어서지 않을 것 같은 늙은 뿌리가 아주 조금’ 움직이는 기적도 생기는 것이다.


김도언의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주면 좋으니」.

‘양성애자란 양편의 세계 모두를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갖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양쪽이 모두 필요한 두 배의 결핍을 갖고 태어난 존재인가.’ Y와 B, 남자와 여자를 모두 좋아하였던 나는 결국 그 두 사람 모두와 결별해야만 했고, 드디어 의자라는 새로운 섹스 대상을 찾기에 이르게 되니... 드디어 ‘의자 색정광’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김종은의 「흡혈귀」.

쓰러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 중간은 갈 것이라고 여겼던 한 남자가 남자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양이 서글프다. 밟히고 스러지는 과정의 중간중간 구 과장과 미스 김이 보여주는 호의도 나쁘지 않고, ‘진심이 있으면 다 된다’ 라고 가르친 남자의 아버지의 교육 철학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남자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김태용의 「육체 혹은 다가오는 것은 수학인가」.

오랜만에 읽는 구토유발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이 그런 것은 아니고, 단락의 구분 없이, 일정한 맥락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단어와 말과 다시 말과 단어의 뒤섞임이라는 혼란스러운 형식이 구토를 유발하는 셈이다. 읽고 있지만 읽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이 독서라니...


박상의 「모르겠고」.

아테네에서 만난 아키와 네오... 내가 보던 야동 속 일본 AV 배우를 여행지에서 만난다면? 이 시덥잖고 흥미진진한 설정이 소설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섹스로 인해 발생하는 성 에너지를 채집하는 유에프오의 등장에 대한 부분이 등장하면 크게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모름지기 섹스의 유머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소설로서의 가치는 모르겠고...


은승완의 「배롱나무 아래에서」.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그 남자의 첫사랑 그리고 그 남자가 거세 예찬론자가 된 사연이 기막히다. 모두들 받아들인다고 하였으나, 결국 성기가 결핍된 그녀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이라니... 그리고 여기에도 유에프오가 등장하니, 결국 섹스는 지구인의 손을 떠나 우주인의 손으로 구원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인가...


권정현의 「풀코스」.

노래방, 안마방을 비롯해 대딸방, 인형방에 이르기까지 많고 많은 방을 전전하는 ‘방류계’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삐끼 노릇으로 만나 아이까지 낳은 아내는 아르바이트로 폰 섹스를 하고, 남편은 이제 수업이 많은 방의 한 켠을 차지하고 새로 들어온 신참 아가씨를 리얼 테스트한다. 그리고 아내는 드디어 참고 참았던 욕망을 모텔방에서 드러내고, 남편은 풀코스의 서비스를 실행해야 한다.



김종광, 조헌용, 김도언, 김종은, 김태용, 박상, 은승완, 권정현 / 남의 속도 모르면서 / 문학사상 / 279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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