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외 《2003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통속적이지만 리얼한 죽음과 운명의 궤적이 보이는 현장감...

by 우주에부는바람

*2003년 5월 1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김인숙의 것이다. 그녀가 한때 통속 작가였다는 사실, 그 후 민족문학계열의 작가로 대변신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도 이제는 쉽지 않다. 어쨌든 그러한 그녀의 변신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던 시절이 있었음과 그 시절에 빗대어 그녀의 작품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하지만 뭐 첫 번째 수상자인 김승옥으로부터 그 찝찝함을 내재하였다고 하니 깔끔하지는 않다. 여하튼 김인숙의 소설은 그렇다. 통속소설의 실재감과 리얼리즘 소설의 현장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수상작인 「바다와 나비」는 조선족 문제와 조기 유학 문제, 그리고 중년의 부부가 겪는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여기에 삶의 비의와도 같은 죽음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 만드는 궤적, 그 시작과 현재에 대한 언급이 소설의 주제이다. 물론 여기에 미래는 보이지 않는데, 그래서 더욱 절박하게 현재적인 소설이다.


전상국의 「플라나리아」.

같은 제목의 일본작가소설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흥미가 가는 생물체인 플라나리아.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함께 하는 플라나리아는 몸이 잘리면 그 만큼 개체수가 불어날 뿐 죽지는 않는다. 과학교사인 나는 학생들과 플라나리아를 가지고 실험을 하던 어느 날 감쪽같이 플라나리아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동거하던 그네 또한 이 플라나리아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나는 그네가 사라진 정말 집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집안 어딘가에 있지만 그저 사라져 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지 헷갈린다. 자연과 인간, 존재의 사적인 역사성과 순간의 포착이라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재인 플라나리아가 너무나 적절하게 어울려서 빈틈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대상 수상작이어도 불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아, 그리고 섬뜩함을 느꼈던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60년대 초 제임스 맥도널과 그의 동료는 플라나리아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학습시킨 플라나리아를 다른 플라나리아에게 먹여서 학습된 내용이 전달되는가를 알아본 것이다. 접시에 담긴 플라나리아에게 불빛을 비춘 후 전기 충격을 가하자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전기 충격의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불빛을 비춘 후 전기 충격을 여러번 반복하게 되면 플라나리아는 불빛만 비춰도 몸을 동그랗게 오그렸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학습된 플라나리아를 갈아서 다른 플라나리아에게 먹였다. 학습된 플라나리아를 먹은 다른 플라나리아 역시 불빛만 비춰도 몸을 말았다. 학습된 내용이 전달된 것이다.”


복거일의 「내 얼굴에 어린 꽃」.

목성의 위성인 개니미드에서 일어난 대참사 동안 얼음에 갇혀 있다가 살아난 나는 로봇이다. 그리고 개니미드에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인간은 대참사 후 모두 지구로 떠나가고, 이제 호모 사피엔스 로보티쿠스만이 남아 있다. 순수문학계열에서는 유일하게 SF소설을 쓰는 작가인 복거일의 고군분투. 작가의 보수적인 문제의식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지만, 그의 SF 소설쓰기에는 무연하게 한 표 던진다.


김경욱의 「고양이의 사생활」.

‘아저씨 나랑 같이 죽을 수 있어?’라는 문구에 매료되어 고양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 아이와 알고 지내게 된 나, 그리고 개를 키우는 아내. “죽는 순간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고양이의 비난...” 하지만 고양이와 나와의 관계는 사실 프로그램 내부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의 무미건조함과 게임의 긴장감... 현실인가 게임인가의 선택... 그리고 게임 속의 상황은 사생활이 될 수 있을까?


김연수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어떤 죄라도 짓지 말며 무릇 선이란 받들고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하게 한다면 그게 바로 부처님이 가르친 모든 바다...” 예정과 봉우. 둘 사이에 잉태되었던 아이의 흔적을 좇는 두 사람.


김영하의 「너의 의미」.

삼류영화감독을 ‘보헤미안적 예술가의 헌신’으로 보고 사랑하게 된 신인 소설가 조윤숙. 그리고 삼류영화감독인 나, 그리고 내가 간혹 그리워하는 서로의 몸에 아이스크림을 뿌리고 빨아 먹으며 섹스하기를 즐기는 아이스크림 모델. 문학, 영화 등의 예술에 대한 혹은 그 뻔지르르하게 속내가 빤한 사랑을 향해 내지르는 김영하식의 독설. 그래 너 사랑아, 너의 의미는 진정 무엇이냐.


전경린의 「부인 내실의 철학」.

미안하지만 이 단편에 대한 정리를 찾을 수가 없다. ㅠ.ㅠ


하성란의 「자전 소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가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나. 그리고 오랜만에 소설 속의 친구들이자 실제의 친구들을 만나는 나. 그리고 이제야 진실이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소설 속의 허구. 허구는 허구가 되고, 새로운 사실의 복원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사실과 상상의 경계가 서로를 침범하거나 침범당하는 사실에 대한 소설가의 부침.


윤성희의 「그 남자의 책 198쪽」.

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소설이다. 이런 소설이 좋다. 도서관, 갈매기, 198쪽, 죽은 여자, 뺑소니, 목격, 자전거. 낡아가는 일상에 대한 조용한 회고의 기록.


정미경의 「호텔 유로, 1203」.

방송작가인 나, 그리고 내가 써주는 원고를 읽는 윤미례. 하지만 방송을 듣는 독자들에게는 내가 쓰는 원고가 아니라 윤미례의 감정 가득한 목소리가 진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명품을 선호하는 나와 명품이라는 기호를 간직한 상품 사이처럼 그 가치 전복을 암시한다. 자본주의의 기호인 상품과 그 상품의 구매를 상징하는 신용카드, 그 사이에 이물질처럼 끼어 있고, 소비의 주체이며 소비에서 수시로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나는 나보다 몇 살 어린 순수한 아마추어 시인과 호텔 유로 1203호에서 기다리는 남자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가 명백하다. 망설임도 없다. 하지만 소비를 향한 엘레비이터가 되어줄 남자가 기다리는 호텔방의 초인종을 누르는 주인공이 서글픈 것은 어쩔 수 없다.



김인숙 (전상국, 복거일, 김경욱, 김연수, 김영하, 전경린, 하성란, 윤성희, 정미경) / 2003 제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사상사 / 355쪽 / 20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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