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형용의 표현이 오히려 누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죽음을..
삶을 살아내는 일이 피곤하여 감내하기 힘들 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것인가? 던져 놓고 나니 그야말로 우문愚問 이다. 삶으로만 삶을 살아내는 것은 죽음으로써 삶을 걷어내는 것과 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니, 부러 그 둘을 어설프게 나누려는 의도야말로 미욱한 우리들이 평생을 살아내면서 결국 걷어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진정한 죽음이 보이지 않으면 진정한 삶도 없다. 꼭 나에게 맞는 생활을 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의식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죽음은 삶의 저울 같은 것. 죽음은 삶의 알리바이.”
1983년에 일본에서 발간되었고, 그 후 25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던 <메멘토 모리>를, 2008년 작가가 직접 어떤 사진과 말은 빼고 어떤 사진과 말은 집어 넣어서 새롭게 만든 것이 이번에 내가 읽은 <메멘토 모리>이다. 대부분의 페이지에 사진이 실려 있고, 그 사진 위에 후지와라 신야 특유의 아포리즘이 간결하면서도 강건한 자태로 우뚝 서 있다.
“죽음이란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다가오는 마지막 어느 순간을, 인간은 결단을 내리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살아 있는 동안 죽을 때를 생각하여 결단력을 길러두세요.”
그간 읽은 책들에서 보여준 작가의 생각이 응축된 잠언들을 쉬어가며 읽으면 되겠구나, 라고 맘 편하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울림이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그것이 저기 바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안을 향하니 그 파급의 힘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여기에 흔들림으로 또렷함을 강조하고 어둠으로 밝은 곳을 각인시키는 사진이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하니 두고두고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죽음이란, 죽음을 걸고 주위 사람들을 이끄는, 삶의 마지막 수업.”
젖의 바다, 잠자는 섬, 눈꺼풀 뒤, 나비 그늘, 빨간 가시, 하늘 거울이라는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그 세계로의 진입로에 ‘어이, 저기 가는 선생, 당신 얼굴을 어디 두었소’ 그리고 출구에 ‘낡은 꾸란’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삶과 죽음에 관한 독학의 자료로 삼아도 좋을 말들이 각혈처럼 흩뿌려져 있는 책이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장식물이다.”) 고양이 스스로만이 고양이를 장식할 수 있듯 후지와라 신야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꽃은, 싹트는 처녀. 꽃은, 활짝 핀 색마. 꽃은, 흩어지는 신.”) 성과 속이 동시에 존재하는 우리들 삶의 문명과 야만을 항하여 다가서는, (“꽃이 흔들린다. 꽃그늘이 흔들린다. 빛에서는 발정이, 그림자에서는 죽음이 보인다.”) 고혹적이고 현란한 말의 향연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끝이 났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오히려 책 속의 말고 사진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러니 섣부른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순간,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까 싶은 어떤 경외로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죽음으로 모든 삶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책을 덮었다고 하여 끝나지 않는 후지와라 신야의 일성一聲 이 한동안 귓가에서 끊이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후지와라 신야 / 양억관 역 / 메멘토 모리 (Mémento-Mori) / 한스미디어 / 179쪽 / 2010 (1983,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