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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동양기행》

뺨을 때리면 뺨을 맞아야 하는 가까운 거리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작가의 시

by 우주에부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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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부터 나와 똑같은 혈액이 물결치는 동양의 자태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분명하게 바라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좋아하는 부분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모든 장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것. 선악과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섞여 있는 그거리에 세계가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도로부터 시작된 작가의 방랑기는 점차 동양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작가는 1980년에서 1981년에 걸쳐 4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터키, 시리아,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이라는 동양의 나라들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이스탄불, 앙카라, 캘커타, 치앙마이, 상하이, 홍콩, 서울이라는 도시들을 관통하는 여행을 하기에 이른다.


“에게 해 서쪽에서는 썩어져야 할 것들이 포장된 채 숨겨진다. 건전하고 행복한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썩은 오렌지 껍질, 돼지머리, 인간의 시체, 광기, 전염병 환자, 곤드레만드레 취한 자, 이 모든 것들이 시민의 생활을 위해서라는 변명과 함께 격리된다... 이스탄불, 캘커타, 싱가포르, 홍코, 혹은 도쿄나 로스앤젤레스라고 해도 오렌지 껍질과 돼지머리가 버려지는 것은 동일하다. 단지 어떤 곳에서는 거리 안쪽에 뿌려져 격리되고, 다른 곳에서는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앞에 멋대로 내던져지는 것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여행의 과정에서 작가는 에게 해의 서쪽으로 명명되는 유럽 혹은 서양과 분명한 차이를 보고 있는 동양 혹은 동양적인 것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피력한다. 문명화 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동양에서 발견되는 여러 이미지들을 낮은 수준의 것으로 차별화하는 대신 보다 동등한 수준의 또 다른 무엇으로 구분하는 현명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작가이다.


“서아시아에서도, 동아시아에서도 단식이라는 종교행사가 거행된다... 그러나 서아시아(회교)의 단식(라마단)이란 광물적 세계의 가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육체적인 단련이다... 반명에 동아시아(힌두·불교)의 단식이란 식물적 세계의 풍요로움에서 정신을 되찾기 위한 훈련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아시아권의 국가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는 흔히 이슬람권이라고 불리우는 서아시아의 국가들과 인도를 기점으로 하여 힌두교 혹은 불교의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가지는 모습을 광물적인 것과 식물적인 것으로 설명하며, 이 두 세계가 피력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사인펜 한 자루와 메모 노트, 그리고 평범한 (삼각대도 없는) 카메라 한 대와 육안에 가까운 광각 렌즈 하나만으로 구성된 단출한 차림으로도 작가는 자신의 명징한 사고를 훌륭히 기록한다.


“... 티베트에는 신이 하늘에서 천칭으로 이 세상을 저울질한다는 미신이 있다. 천칭의 양쪽 끝 받침접시에는 ‘행운’과 ‘불운’이 올려져 있는데, 불운이 무거워지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은 ‘행운’의 받침접시에 돌을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미신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원리를 자세히 관찰한 후 터득한 하나의 명제라고 생각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티베트의 사원에서 절제된 음식과 침묵으로 지냈던 스무날의 기록이다. 세상과 거의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는 듯한 그곳에서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그곳에 머무는 승려들의 움직임 혹은 눈빛이 어떠했는가를 가만가만 기록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 문장들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나 또한 이 어지럽기 그지 없는 속의 세계에서 한발 불러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지난 1년간 나는 누구나 들고 다니는 평범한 카메라 한 대와 단 한 개의 렌즈만으로 동양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삼각대도 사용하지 않았다. 삼각대는 기계의 다리일 뿐, 내 다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렌즈는 99퍼센트 육안에 가까운 광각렌즈만 사용했다. 망원렌즈를 통해 거리의 풍광을 관찰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피사체가 내 뺨을 때리려 한다면 언제든 때릴 수 있고, 웃고 싶다면 언제든 웃을 수 있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관점에서 사회를 보는 시점을 선택하는 일은 바로 거리에서, 그리고 여행에서 내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동양기행>은 <인도방랑>이나 <티베트방랑>에 비하면 꽤 많은 사진이 실려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작가가 거쳐 간 나라 혹은 도시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들이다. 사진들을 보고 있다면, 뺨을 때리면 뺨을 맞을 수밖에 없는 거리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을 법한 작가가 떠오른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릿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또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비우며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작가를 상상하면 부럽고도 흥미로우며 또한 경이롭다.



후지와라 신야 / 김욱 역 / 동양기행 (全東洋街道) / 청어람미디어 / 전2권 1권 285쪽 2권 301쪽 / 2008 (1981)



ps. 『동양기행』(1981)은 『인도방랑』(1972) 과 『티베트방랑』(1977)에 이어지는 동양 여행기 3부작의 완결판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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