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 《미녀냐 추녀냐》

냉정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일본의 러시아어 통역사로 최고라 불리운 작가가, 그뿐만 아니라 실은 발군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에세이시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책이다. 작가는 이 책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각종 에세이집을 내기 시작하였고, 그 책들로 여타의 문학상들을 수상하였다. 물론 그러한 이유로 이웃나라 한국에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숨은 독자의 마음을 즐겁게도 해주었으니, 어쩌면 나에게도 귀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은 통역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면서 겪은 많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자신을 통역의 길로 인도한 많은 선배 통역사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이뤄낸, 작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통역 혹은 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한 바로보기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통역과 번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거론함으로써 독자들을 이 이종문화 혼합의 최전선에 위치한 작업으로 끌어들이고, 이어서 부정한 미녀와 정숙한 추녀라는 작가 자신의 통역사론으로 끌고 가서, 문맥을 통한 말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작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마무리되는 통역을 설명함으로써, 작가 나름대로 통역 올레길을 완성시키고 있다.


“원문에 충실한지 아닌지, 원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좌표축으로 정숙함을 측정하고, 원문을 잘못 전달하고 있거나 원문에 어긋난 경우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 편안하게 들리는지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경우에는 추녀라고 분류하면 네 가지 조합이 생기는데 다음과 같다.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


작가는 발언을 하는 사람의 의도에 충실한 정도를 가지고 정숙함과 부정함을 나누고, 통역사가 청자에게 전달하는 말의 아름다움에 따라 미녀와 추녀를 나눈다. 그리고 이렇게 나뉘는 네 가지 수준의 여인 중에서 각축을 하게 되는 부정한 미녀와 정숙한 추녀 중 자신 혹은 유럽 쪽과 비교하여 일본의 통역사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정숙한 추녀가 되기로 작정을 한다고 실토한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역문을 추구하기 보다는 원 발어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좀더 노력을 기울이는 자신의 통역론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통역을 하는 사람이 가지는 위험성으로 존재하는 일본적인 특징들, 그러니까 문맥에 구애 받지 않고 정확한 표현에 치중하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인들에 비하여 이미 아는 사실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침묵의 미를 강조하는 일본인들이 저지르게 되는 실수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방위적인 섭렵의 과정을 통하여 원 발언자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통역사라는 직업의 애환 또한 적절히 표현한다.


“... 우리의 모국어, 즉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익힌 언어, 마음을 토로하고 생각할 때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구사하고 지배하는 기본적인 언어는 일본어다. 제2언어, 즉 처음에 익힌 언어 다음에 익힌 언어, 대체로 외국어는 제1언어보다 절대로 잘하지 못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은 외국어를 익혀도 못하는 일본어 수준보다 더 못하는 정도로 밖에 익힐 수 없다...”


더불어 이런 모든 통역사론의 기저에 깔려 있는 모국어 학습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적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가진 통역사라고 하더라도 그 수준은 모국어 능력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통하여 통역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능력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자신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을 꿰뚫어 보며, 이를 거시적인 문화의 일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알리는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에세이시트 기질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요네하라 마리 / 김윤수 역 / 미녀냐 추녀나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不實な美女か貞淑な醜女か) / 마음산책 / 319쪽 / 2008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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