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침묵'으로부터 나온 후지와라 신야의 '말'이 인도 '여행'의 바이블

by 우주에부는바람

1969년 당시 스물네 살이던 후지와라 신야는 일본을 떠나 인도방랑의 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3년, 인도를 방랑하며 사진을 찍고 돌아온 작가는 <인도방랑>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인도를 여행하려는 혹은 여행을 하려는 이들에게 하나의 바이블이 되었다. 철학가의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가는 끊임없이 사유한다) 동시에 사진가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작가의 문체는 회화적이다), 그러니 작가의 여행기를 읽고 있다 보면 사로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 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그렇다고해서 어마어마한 무엇이 들어 있는 여행기는 아니다. 그저 젊은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 여행을 도와주는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기 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곳을 묵묵히 향하고, 그곳으로부터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명징한 문체에 싣는 작업을 할 뿐이다. 고매한 인격으로 바라보는 인도가 아니라, 헐벗은 젊음을 통하여 바라보는 인도이고, 그래서 그의 인도를 더욱 리얼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 높은 인격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곧 좋은 여행은 아닙니다. 더없이 시시한 녀석부터 차원 높은 사람까지, 오히려 여행 중에 얼마나 다양하게 만났느냐가 중요하지요. 그것이 여행의 풍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에서 히피문화가 창궐하던 시기, 마지막 좌파 문화 혁명이 창궐하고 또 빠르게 시들어가는 시기에 작가도 아마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는 절대로 인도를 하나의 이상향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수평한 또 하나의 세계로서 인도가 가지는 모호한 이미지를 자시의 렌즈에 담고, 또 그것을 악착같이 텍스트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 많은 인도인들은 인간을 구제 불능의 생물이라고 여기고 있고, 자신들이 그런 생물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그래서 각오하고 느긋하게 인간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간단히 말개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배반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약아빠져서 스스로 배반한 자신의 육체에 대해 꿈을 걸고 있다. 자신의 육체가 내세에 개화하리라고 한없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일군의 화려한 인도 백성들은 꿈을 꾼다는 하나의 행위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그 육체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해도 돼지도 아니고 개도 아니다. 간혹 그들의 인간 유지 방식이 다소 어리석고 어처구니없어 보이더라도 그것에 의해 분명하게 하나의 인간을 유지하고 있는 한, 결국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일이 아니다.”


문득 1990년대의 어느 즈음 (의사민주주의의 획득과 학생 운동의 몰락으로 지향점을 잃은 당시의 젊은 청춘들 또한 인도를 어떤 구원과 쇄신의 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인도를 향하려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현재의 아내가 보낸 SOS 신호가 없었다면 (당시 나보다 앞서 사회 생활을 하던 아내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출판사에서 함께 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두 달 일정으로 계획되어 있던 나의 인도 여행은 (후지와라 신야도 애초에 뭐 3년을 기약하며 출발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실행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크게 변했으리라는 장담할 수는 없다. 흔한 말로 인도는 보고 싶어하는 만큼 자신을 보여준다고 하였으니, 후지와라 신야가 본 인도와 내가 본 인도가 같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을 읽는 동안, 또다시 바로 그 시기에 겪은 내 청춘의 혼돈과 그것을 바로 잡아볼 요량으로 계획하였던 인도 여행이 오롯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사이 몇몇 친구들은 계획한대로 인도를 여행하였고, 길지 않은 시간 후에 다시들 돌아왔다.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몇 백 장 인화하여 가지고 와서, 밤새 설명을 한 후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 그 사이 난 결혼을 하였고, 이제는 함께 기거하는 고양이들 탓에 아내와의 짧은 여행조차 실행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것만은 자신할 수 있다. ‘분명하게 하나의 인간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비록 헛헛하지만 아직은 떳떳하다는 사실만큼은...



후지와라 신야 / 이윤정 역 / 인도방랑 (印度放浪) / 작가정신 / 357쪽 / 2009, 2011 (1972,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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