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희귀한 상상력과 성실한 농담에 대한 신뢰는 여
작가의 첫 번째 작품집 <펭귄 뉴스>의 리뷰에서 작가를 가리켜, 허무맹랑한 상상력을 집요하게 진행하라는 지령을 받은 사람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상상력은 사실 툭툭 던지는 농담과도 같았는데, (사실 우리의 주류 문단에서는 이런 농담을 능수능란하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다, 문체나 문제의식은 조금 다르지만 김종광 정도를 꼽을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농담 속에 뼈가 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니 쉽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전작인 <좀비들>에서도 느껴지는 바, 작가의 농담은 중단편에서는 그 진가를 십분 발휘하는데 비해 장편에서는 조금 처진다는 느낌이다. 그 농담을 장편으로 끌고가자니 (<좀비들>에서도 그랬지만) 그 과정에서 인과 관계에 대한 집착의 (인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집착 뿐만 아니라 인과 관계를 깨뜨리려는 집착까지를 포함하여)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좀비들>에서의 도미노 개념 그리고 <미스터 모노레일>에서의 확률 개념 등이 그렇다.
소설은 청소년기에 한쪽 귀를 다쳐서 모노,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모노가 (사실 그의 부모는 일상 생활 조차 게임을 통한 승부로 풀어가는 게임 메니아이다) 일주일만에 뚝딱 만든 보드 게임 ‘헬로, 모노레일’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유일한 그러나 게으른 친구 고우창과 함께 그것을 판매하고, 석 달 만에 100만개를 판매하는 대박을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소설에 등장하는 보드 게임인 ‘헬로, 모노레일’은 형태로 보자면 보드 게임과 카드 게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게임이고, 장르로 보자면 놀이판을 두고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경주 게임이자 카드를 가지고 상대방을 속여야 하는 속임수 게임이고, 테마에 따르자면 일종의 범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헬로, 모노레일’은 형사인 블루, 은행 강도인 블랙, 미용사인 핑크, 농부인 레드, 소설가인 화이트라는 다섯 가지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진행을 하게 된다.)
“... 확률이 적은 사건도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난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최악의 순간은 반드시 닥치게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최악의 순간이 닥칠 확률은 낮기 때문에 어쩌면 최악의 순간이 자신을 피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보드 게임은 주인공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닌다는 점,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있다는 점, 그리고 보드 게임의 성공 탓에 이들이 경제적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닐 여건이 된다는 점 등의 배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각의 주사위를 던지며 진행하는 확률 게임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물론 동시에 상대의 패를 잘 읽고 반응해야 한다는 인과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소설 속의 또 다른 한 축, 그러니까 고우창의 아버지 고갑수가 빠져 있는 우자자라는 존재와 우주볼이라는 원의 형태에 집착하는 종교인 볼교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도록 만드는데 활용된다.
“볼교(ball敎 ; Balls Movement) 볼교, 혹은 볼스 무브먼트는 우주의 모든 원리가 볼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볼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종교다. 태초에 우주자(볼교에서의 神)가 하나의 구슬을 만든 다음 그 구슬을 무한복제해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고 믿으며, 우주는 무수히 많은 구슬을 품은 거대한 볼이라고 여긴다. 볼교의 총본부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다. ”
그러니까 사각의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무작위의 숫자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는 보드 게임 ‘헬로, 모노레일’은 우연의 힘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의 시작을 원으로 환원시키는 사이비 종교인 ‘볼교’와 뚜렷하게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우연의 힘으로 해석하는 보드 게임의 창조자는 어느 순간, 세상을 필연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볼교의 창조자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엄청난 탄력을 가진 공처럼 이리저리 튀기 시작한다.
“... 아침에는 소매치기를 당했고, 오후에는 호텔방에서 주사위를 던졌고, 갑자기 베니스 행 기차를 타게 됐고, 기차에서 이상한 승무원을 만났고, 승무원의 펀치 때문에 시에나에 내리게 됐고, 시에나는 몬탈치노와 아주 가까운 곳이란 것을 알게 됐고, 몬탈치노까지 가는 버스는 끊어졌지만 몬탈치노까지 태워다줄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됐다. 모노는 처음부터 자신의 선택이란 별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주사위를 던지고, 자신은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만큼 이동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보드 게임 속의 말처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추격전,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카드를 활용한 (그러니까 모노 일행이 만나게 되는 특별기동검표반과 같은) 아슬아슬한 탈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소설적 긴박감은 소설가가 활용하고 있는 농담의 기원에 대한 추측 속에서 (그러니까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가 던지는 주사위 속의 말이 아닌가 하는 모노의 생각은 이현세의 만화 <아마겟돈>을 연상시키고, 얼렁뚱땅 우주의 기원을 설파하는 볼교 무브먼트는 <라엘리안 무브먼트>를 연상시킨다) 점차 희석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의 중단편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던 (어쩌면 발견하기 이전에 소설이 끝이 난 것일 수도 있는) 단점들이 장편 소설에서는 종종 노출되니 아쉽다. 작가의 중단편 속 농담이 (혹은 상상력이) 장편 속의 상상력으로 (혹은 서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탄탄하고 세밀한 구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작가가 보여주는 희귀한 상상력, 그리고 성실한 농담에 대한 신뢰를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이 작가를 계속 읽도록 만들고 있다.
김중혁 / 미스트 모노레일 / 문학동네 / 409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