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순 《철수 사용 설명서》

파격적 구성을 뒷받침해주는 풍성한 내용이 부족하여, 자로 잰 듯 한 상상

by 우주에부는바람

2011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아직 서른 이전인 작가의 자로 잰 듯 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 자로 잰 듯 한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다. 철수와 영희의 바로 그 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그 철수가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이야기하고, 철저하게 기계화된 사회인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 설명서라는 형식을 끌고 왔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파격적이기는 하되 짐작 가능한 상상력인 것이다.

“원인이 철수에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짧은 연애 기간도, 재능이 없다며 두어 달만 다니고 그만두었던 피아노 학원도, 알고 보니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애구나 하면서 끝났던 우정도, 모두 철수의 잘못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부주의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소설은 바로 이 철수의 사용 설명서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이 사용 설명서를 제래도 작성하기 위하여 작가는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 라는 사항들을 차례대로 짚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철수라는 인물의 구체적인 기능들을 살펴볼 수 있고, 여러 가지 모드들에 대한 귀뜸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중간중간 철수라는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이 남기는 Q&A 게시판이나 사용 후기 게시판을 통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까지도 살필 수 있다.

“... 표준이 언제나 정상인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의 기대와 예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불량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이 제품의 특성이라는 점을 숙지한 후에 사용하는 것이 사용자의 의무일 것입니다. 의무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고장의 원인 및 제품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씩 제품, 철수가 가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기능상의 오류 혹은 오류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사실은 오류가 없이 기계적으로 완전한 것만을 요구하는 바로 우리들, 사용자의 문제인 것은 아닌지 설득 한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요구 사항을 진작에 짐작할 수 있기는 하지만, 파격적 구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선한한 내용이 제공되지 못하니, 이 직접적인 요구 사항에 마냥 부응하기는 힘든 노릇이다.

“... 이제 철수는 온전한 불량이었다. 아닐 거라고 아등바등하고 혹시 고장일까 싶어 불안해하던 때보다 오히려 나은 듯도 했다. 철수는 확실히 고장 났다...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고 무작정 철수를 사용했던 모두에게는.”

그렇게 결국 철수는 스스로 자신의 오류를, 자신이 온전치 못한 불량품임을 선포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기능을 이리저리 사용해보고 나무라고 벌하고 떠났던 많은 이들, 그의 가족 혹은 그의 연인들을 향하여, 때로는 이들 모두로 표상되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힘껏 외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매뉴얼에 적힌 그대로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고 있는 물건들과 자신을 스스로 차별화시킨다. 그렇게 앞으로 철수의 사용 설명서는 끊임없이 갱신하게 될 것임을 알리다.

“사용 설명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계속 고쳐 나갈 뿐이다. 그러니 철수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항상 최신판 철수 사용 설명서를 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고장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꽤 재미있을 수도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조잡하게 기능만 덕지덕지 붙어 있는, 좋게 말하자면 스펙 좋은 인간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는(그게 사실 오히려 소설 속 철수의 스펙이 일반적인 우리들의 스펙인 것만 같아 더욱 싫지만), 철수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이기적이고 획일화되고 그래서 볼품 없고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인간에 대한) 판단력을 지적하는데 나무랄 데 없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파격적 구성을 (그렇지만 조금은 예측 가능한 상상력을) 제대로 뒤받침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데는 실패한 작품이 되고 있다. 특히 철수라는 제품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기능을 설명하는데 왜 그리도 여자와의 관계에서 발휘되는 열의 문제를 자주 다루어야만 하는지, 철수라는 제품가 비교되는 가전제품들은 왜 그리 또 뻔하기만 한 것인지, 게다가 몇몇 소절들은 너무 자주 되풀이되고 있는 것인지 등등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약점들이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누군가가 언젠가는 시도하였을 좋은 구성을 발 빠르게 도입하였지만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할만한 내용의 풍성함이 아쉽다.


전석순 / 철수 사용 설명서 / 민음사 / 225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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