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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발명마니아》

힘 없는 것들을 향한 온정과 힘 있는 것들을 향한 조롱에서 비롯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요네하라 마리 여사와 같은 산문을 쓰는 이가 우리에게도 있다면 참 좋겠다,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런 책이다. 실제로도 어린 시절부터 (책 말미에 실린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자면) 엉뚱한 상상과 발명의 마니아였던 작가가 주간지인 <선데이 마이니치>에 쓴 발명과 관련한 (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발명을 채근하는 사회에 대한 투철한 고발의 정신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백 개의 글을 모아 만든, 사랑과 온정과 비평과 조롱이 평화롭게 뒤섞여 있는 산문집이다.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트렌디하게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그 현상을 새로운 발명품을 통해 얼렁뚱땅 비난하는 듯한 글로 채워진 <뭐든지 하이브리드>, 자연 환경을 비롯해 동물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돋보이는 <비에도 끄떡없고, 햇빛에도 끄떡없다>, 지구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전지구적 프로젝트를 너무도 쉽게 발설하는 <달빛 반사 프로젝트>, 쓸모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발명 마니아에게는 더욱 각별할 수도 있는 발명들을 모아놓은 듯한 <연휴가 줄어들지 않는 달력>, 가장 의미심장하게 읽은 부분인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하여 강경한 어조의 비판과 조롱이 훌륭한 <궁극의 팍스 아메리카나>, 이런 것도 발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궁극의 발명들로 채워진 <발명왕 최후의 발명>이 바로 그 여섯 개의 챕터이다.


“문화인류학자나 고고학자의 연구를 보면, 인류가 처음 의복을 입게 된 것은 성경이 설파하듯이 뱀으로 변한 사탕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뒤 나체가 부끄러워져서도 아니고, 현재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처럼 추위를 막기 위해서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악령을 떨쳐내기 위한 주술적 목적 때문이라고 한다. 요컨대 부끄러워서 숨기는 게 아니라 숨기기 때문에 부끄러워지는 것이고, 추우니까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을 입으니까 추워졌다는 이야기다...”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면 아주 좋은 상식들과 마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애완동물에게 옷을 입힘으로써 오히려 그 동물들로부터 추위를 버티는 힘을 앗아가버리는 우리들의 세태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 인간들이 처음 옷을 입은 그 연유의 근원에 대한 상식을 아무것도 아닌 양 슬쩍 보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즐거움의 일종이다.


“개체의 수명은 개체의 특성뿐 아니라 그 개체가 속한 종의 수명에 달려 있다. 종 자체의 수명은 생태계 전체의 진화 과정에서 결정되어 유전적으로 계승되기 때문에, 아무리 개체가 노력한들 그 프로그램의 틀을 넘어설 수는 없다...”


그런가하면 발명마니아다운 과학적인 결론들도 종종 발견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하여 개인의 수명을 늘린다고 하여도,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평균의 수명이 늘지 않는 한 일정한 틀을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론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발명가의 기백으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직접들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 2세, 3세 정치가를 각별히 좋아하는 일본의 매스컴과 일부 유권자의 취향을 김정일도 침을 흘리며 부러워한다. 김정일은 김일성 정권을 세습한 자신을 북한 인민이 받아들이도록 얼마나 철저하게 세뇌와 억압 시스템을 만들었는가. 그런데 일본인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2세, 3세에게 좋아라 하고 투표를 한다...”


하지만 이번 산문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요네하라 마리 여사가 내뱉는 정치 사회와 관련하여 내뱉는 독설들이다. 그러니까 2,3세 정치인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일본 사회를 아낌없이 조롱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자신의 자식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법을 조롱하는 우리나라의 2,3세 경제인들과 그들을 향하여 너그러운 (아니 그 기세에 눌려 찍소리도 하지 못하는) 언론과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떠올리게 되니, 좋은 글이란 이처럼 시공간을 뛰어 넘어 보편적인 이성에 도달한다는 사실의 좋은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 궁극적인 성욕 증진법은 전장에 몸을 두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장은 항상 유혈과 시체로 차고 넘친다... 이렇게 많은 죽음과 시체를 마주한 인간에게는 어떻게든 그것에 저항하려는 강렬한 본능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적을 섬멸함으로써 스스로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분신을 생산하여 자기의 유전자를 영속시키려는 욕구가 맹렬한 기세로 싹트는 것이다... 따라서 전장에는 성욕이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라 성욕 감퇴로 괴로워하는 노인들이 가야 마땅할 것이다. 헌법의 평화조약을 걷어치우고 전쟁터에 일본 봉사를 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고이즈미 총리와 국회의원 선생들을 제일 먼저 보냈으면 좋겠다. (이 글은 2004년에 쓴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글은 쇠퇴해가는 성욕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서 전쟁을 거론하는 부분이다. 아마도 이라크전에 자위대를 파병하는 문제로 설왕설래가 되던 시기에 쓴 글인 듯한 위의 내용에서 작가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성적인 폭력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들춰냄과 동시에 그처럼 성욕을 활발하게 만들어주는 전쟁터에 자국의 늙은정치인들을 보내자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이중 삼중으로 이들 정치인을 조롱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산문집에 실린 백 개의 길지 않은 글들에는 품격 있는 풍자가 가득하다. 게다가 이 글들은 죽음에 코 앞에까지 닥쳐 있는 시기에도 끊이지 않고 씌어진 것들이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발언의 강도를 낮추지 않고, 힘 있는 자에게는 조롱을 멈추지 않지만 힘 없는 모든 것들을 향한 온정의 강도 또한 낮추지 않는, 이제 고인이 된 작가의 태도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요네하라 마리 / 아라이 아요 그림 / 심정명 역 / 발명마니아 (發明マニア) / 마음산책 / 511쪽 / 2010, 2011 (2007)



ps. 책에는 어린 아이가 그린 만화 같은 일러스트들이 있고, 거기에 아라이 아요, 라는 이름의 사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라이 아요, 는 바로 그림 그리는 요네하라 마리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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