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 《교양 노트》

냉정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인자하고 부드러운, 낮고 소박한 자세에서 나오는

by 우주에부는바람

통역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독서가인 자신의 박학다식을 십분 활용하여 통찰력이 짙은 글들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편안한 문체로 쓸 줄 아는 에세이스트인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지난 2006년 작고하셨다) 산문집이다.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한 글이라고 하는데도 책에 실린 80여편의 글들 대부분이 꽤 읽을 만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첫 번째 글에서부터 더 지루해지기 전에 연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마지막 글까지, 작가의 재담 혹은 작가의 저장고에 가득 들어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던 것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뒤편에 놓인, 틀림없는 또 하나의 현실. ‘낮별’은 그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비유였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중


원제인 한낮의 별하늘 (眞晝の星空)은 그러니까 요네하라 마리 여사가 눈에 보이는 것, 이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려는, 그러니까 세상사를 향한 통찰력을 발휘해보고자 한다는 다짐인데, 그러한 다짐이 매우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다. 사실 이 책 이전에 집어들었던 작가의 책 <팬티 인문학>을 보다가 그만두고 말았는데, 다시 한 번 집에 있는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책들을 차례대로 읽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끔 만들 정도이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바탕으로 한 듯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끊임없이 사고, 방송 인터뷰를 하면 열에 아홉이 마치 자신의 의견인 양 방송 진행자나 신문의 논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자신이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에 자진해서 투표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이 정보 조작의 결과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정신의 자유를 위해서는 허울뿐인 자유보다는 자각하고 있는 속박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북풍형, 태양형> 중


예를 들어 우화에 등장하는 바람과 태양의 인간 옷벗기기 대결 이야기를 다루는 것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세차게 몰아쳐 억지로 인간의 옷을 벗기려고 하지만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바짝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북풍과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하여금 더위에 지쳐 옷을 벗게 만드는 태양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태양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사실 태양은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옷을 벗었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작가는 잘도 캐치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처럼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움직이다고 믿는 우리들의 ‘허울뿐인 자유’는 오히려 스스로가 ‘속박’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북풍의 눈에 띄는 간섭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고 지적하는 식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세세하고 엄격한 형식이 있고, 그것을 몸에 익히는 데 몇 년이 걸리는 등 부자유를 익힌 춤일수록 오히려 자기 표현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춤추면서 느끼는 해방감도 크며 만족도도 높다. 형식을 몸에 익히는 과정을 거치면서 몰랐던 동작을 알게 되고, 쓰지 않았던 근육을 능숙하게 움직이게 되고, 자유로워지는 범위가 어느새 더욱 확대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유라는 이름의 부자유> 중


비슷하게 우리들이 강하게 추구하는 자유라는 것의 이면에는 반드시 부자유스러운 준비의 과정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부분도 좋다. 얽매인 (부자유스러운) 훈련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확대된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은 얼마나 타당한가 말이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생활이 사실은 능동적인 힘을 빼앗아가는 절대적인 소비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빗대어 있다는 사실을 크게 흥분하지 않고 요네하라 마리 여사 식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이 사람의 조용조용한 통찰에 독자로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물을 상품화하여 매매의 대상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기본이다... 초기에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점점 상품으로 만들 것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소비 문명이라는 괴물은 만족하지 않앗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인간의 능동적인 힘이었다. 신상품 개발은 인가의 능동적인 힘을 끝없이 깎아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안일은 가전제품이 대신하고, 홍차나 커피를 끓이는 수고는 캔 홍차나 캔 커피가 맡고, 몸을 움직이는 놀이는 버튼 조작 하나로 멋대로 등장인물이 날뛰는 텔레비전 게임에 내몰리는 중이다... 인간에 요구되는 유일한 능동적 행위는 돈을 내는 일. 그 다음은 끊없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보고, 듣고, 먹는다는 형태로 말이다...” <디즈니랜드가 무서운 이유> 중


물론 이처럼 조금은 딱딱해 보이는 (물론 아무리 딱딱한 내용이라도 요네하라 마리 여사 특유의 문체를 따라 가다보면 그세 말랑말랑해진 과일을 후루룩 먹는 것처럼 읽기가 수월하지만) 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는 작가의 지식이 비둘기가 어째서 평화의 상징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누가, 언제,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정한 걸까... 비둘기가 어느 날 전쟁의 신 마르스가 낮잠을 자는 틈에 그가 애용하는 투구에 알을 낳았다. 투구가 본래 역할을 할 수 없어, 마르스는 전쟁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 비둘기가 전쟁을 멈추게 하는 평화의 상징이 된 것 같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 중) 골프장 벤치에서 낚시질을 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호기심>과 같은 글에서는 어딘가에서 한번쯤 꼭 써먹어보고 싶은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아래와 같이 유머와 통찰이 잘 버무러진 글들도 눈에 잘 띈다.


“사람은 어떤 행복 속에서도 불행을 찾아내는 천재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집으로 향하던 나는 마지막으로 부인이 입에 담은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좋으시겠어요. 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잖아요.’ 보석과는 연이 없는 인생을 보낼 게 틀림없는 내가 왠지 엄청난 행운아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어떤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어수룩함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 중


그러니까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젊은 시절 과외를 하던,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어느 부자집에서 겪은 일화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 집 딸의 탄생월이 8월이고 그 8월의 탄생석이 하찮은 것이어서 이를 두고 모녀가 진심으로 불행을 논하는 장면을 보며, 젊은 요네하라 마리는 마냥 행복한 삶 속에서도 불행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구매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탄생석이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이 또한 인간의 속성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냉정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인자하고 부드러우니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제대로 된 계몽에는 큰 반감이 들지 않는다. 옆집 아줌마의 구수한 입담에 현혹되는 일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낮고 소박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니 허세 가득한 메카니즘의 실상을 간파하는 힘이 저절로 따라붙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세상을 관통하는 올바른 시선에 소소한 유머까지 곁들여지니 두루두루 입맛에 맞는 좋은 산문집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 / 김석중 / 교양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眞晝の星空) / 마음산책 / 264쪽 / 2010, 20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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