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우회하는 자에게도 진실이 존재하는가...
*2000년 7월 2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10분의 7쯤을 읽고, 나머지 10분의 3을 읽기 위해 침대에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누웠을 때 내 눈앞으로 5밀리 크기의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간다. 지금 현재형으로 움직이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잘못 퉁겨내는 바람에 조금 말린 모양의 그 유기체는 아마도 숨지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서슴없이 단언컨대 일상을 우회하는 자에게서 진실을 발견하는 일은 힘겹다. 아니 어쩌면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은 있을지 모르지만, 일상이 아닌 삶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그렇게 심사숙고하면서 자신의 일상에 침을 튀기며 반항한다. 하지만 그러한 반항은 거개가 상투적이기도 해서 반항하는 자나, 반항의 대상이 되는 일상 자체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반항의 무력함 앞에서 우리는 싱겁게 웃다가는, 또 다른 시점에서 시작하는 일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간혹 그런 식의 무력한 일상으로의 복귀 앞에서 이 작가의 글을 읽고는 한다. 작가가 끊임없이 전달하는 그 일탈에의 서슬퍼런 욕구와 그 욕구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 글을 읽으면서, 내 일상의 누추함을 더욱 극명하게 만들어 보려는 메저키스트적 욕심이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찬란한 내 안의 블랙홀>이 보여주는 세계, 또는 인물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한없이 멀고, 그래서 찬란하지만 일면 가혹하다. 게다가 텔레비전 드라마라도 보는 것마냥 두 대의, 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번갈아 보여주는 주인공들로 시점을 옮겨 다닐라치면 피곤함마저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줄거리는 산만하면서도 간결하다.
여배우 혼마 모에코는 천부적으로 연기의 감각을 타고난 여자다. 아니 잘 때를 제외한다면 그녀의 삶 전체가 온전히 연기라고 할만한 자이다. 그런 그녀에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 리조트라 불리우는 그 세계는 잔느라는 정체불명의 여자가 죽은 곳이며, 수시로 그녀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는 한다. 그런 그녀는 베트남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사진 작가 카리야 토시미치를 만나고, 그에게 집착한다. 카리야 토시미치 또한 애초 그녀에게 사로잡히지만, 종국엔 그녀의 절대적 집착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만다. 카리야가 선택한 행로는 싱가폴로의 도피지만 결국 그 앞에는 예상했던 것처럼 그녀가 나타나고, 그 사이에 막간처럼 여행사 VIP 담당자인 유이키 다케오가 등장한다. 모에코가 가진 비현실적인 힘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공통점을 지니는 두 남자와 별장에서 지낸 날 밤, 그녀는 카리야 토시미치를 깨워 자신의 모습을 사진 찍도록 종용한 뒤, 사라진다. 그 사이 그들의 삶도 약간씩 서로에게 접근하고, 멀어져 간다. 삶의 배면처럼 간직되었던 혼마 모에코의 또다른 세상이란 것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하고, 남은 자들의 나머지 생에 대한 힌트도 없이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남는 건?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순간이라는 현실의 손짓이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소설 속에서 뿐이다. 소설책을 손에서 내려 놓고난 지금, 난 거대한 일상이 만드는 주름에 낀 것처럼 갑갑하고, 조급하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감상에 젖거나, 미덥잖은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대신 일상을 우회하려는 자, 또는 일상을 우회하고 있는 자의 배면을 생각한다. 그곳에 혼마 모에코의 리조트처럼 도사리고 있는 우리들 각자의 진실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보는 것이다.
침대 바깥으로 튕겨나간 개미의 사체를 찾는 일에 실패하였다. 어쩌면 침대 바닥으로 사력을 기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개미는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미의 철천지 원수인 나와 그 녀석은 하나의 침대를 쓰면서, 위와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연명하느라 똑같이 기를 써야 할 것이다.
무라카미 류 / 정윤아 역 / 눈부시게 찬란한, 내안의 블랙홀 : 무라카미 류의 래플스 호텔 (ラッフルズホテル) / 큰나무 / 243쪽 / 2000 (1989)
ps. 사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감독을 맡았던 영화인 <래플스 호텔>을 재구성하여 만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