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니나 상코비치

삶에 대한 대답을 가로막았던 슬픔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

by 우주에부는바람

슬픔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슬픔의 지속과 이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답하지 않는 무기력함에 휩싸이는 것은 나무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슬픔을 극복하는 힘을 어디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끌어들일 것이냐는 각자의 몫이다. 저자는 그 힘을 책으로부터, 더불어 책을 읽는 동안 떠올린 가족들로부터 길어 올렸다. 그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지켜보았고, 종종 옆에 있었다면 저자의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권 일 년 동안 책을 읽는 일, 도 그렇지만 슬픔을 이겨내는 일은 더더욱...




할머니를 제외한다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90세였고, 응급실에서 일반병실로 다시 일반병실에서 응급실로 옮겨 다니시길 6개월째였다. 언제 돌아가실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오늘이라는 확신을 갖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마음의 준비를 6개월째 하고 있다 보면, 그것은 준비가 아니라 일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은 다른 날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휴학 중이던 나는 학교에 갔고, 사람들과 어울리다 이제 막 술자리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내가 나서서 술자리를 만들지언정 다른 사람이 만든 술자리를 거절할 줄은 몰랐던 나는 술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참 별스러운 날이네, 난 왜 술 마시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 의아해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할머니의 죽음과 연관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무언가를 챙겨서 집을 떠난 흔적들이 있었고, 곧이어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삐삐조차 없던 시절이었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바깥에 있는 내게 연락할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전화 안에서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어서 병원으로 오라고 하였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술집에 갔다면 아마도 그날 중으로 집에 돌아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는 항상 그랬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날 나는 그러지 않았고, 지금도 그걸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저자인 나나 상코비치에게 내가 겪은 것과 같이 다행스러운 우연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한) 암으로 투병 중인 언니를 방문하였고, 헤어지면서 언니는 내일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집으로 돌아오던 저자는 언니의 죽음을 통보 받는다. 그리고 나는 그후 3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안의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읽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p.44)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 계획은 마흔여섯 살 생일을 기점으로 일년동안 (나의 언니 앤 마리 또한 마흔여섯 살에 죽었다) 하루에 한 권씩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의붓딸과 네 명의 어린 아들을 두고 있었으니, 주변에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라며 만류하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택한 하루에 한 권, 일 년 동안의 책 읽기 프로젝트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고전 소설에서 로맨스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주변에서 추천과 함께 보내준 도서와 자신이 직접 도서관에 가서 빌리는 도서까지 포함된 책들은 하루에 한 권씩 일 년이라는 가장 중요한 모토 아래, 보라색 의자에 파묻힌 나의 독서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 독서 목록과 (독서 목록이 책의 맨 뒤에 실려 있기는 하다) 서평을 나열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일 년여의 책읽기 동안 내가 어떻게 나의 언니를 추억하였는지, 언니를 비롯한 나의 가족들의 과거를 어떻게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나의 현재의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적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 그리고 이러한 상기의 과정에 수많은 책들이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스스로를 위하여 만든 하루에 한 권씩 일 년 간의 독서라는 프로젝트를 완성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슬픔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p.280)


슬픔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슬픔의 지속과 이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답하지 않는 무기력함에 휩싸이는 것은 나무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슬픔을 극복하는 힘을 어디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끌어들일 것이냐는 각자의 몫이다. 저자는 그 힘을 책으로부터, 더불어 책을 읽는 동안 떠올린 가족들로부터 길어 올렸다. 그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지켜보았고, 종종 옆에 있었다면 저자의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권 일 년 동안 책을 읽는 일, 도 그렇지만 슬픔을 이겨내는 일은 더더욱...



나나 상코비치 / 김병화 역 / 혼자 책 읽는 시간 (Tolstoy And The Purple Chair) / 웅진지식하우스 / 295쪽 / 2012 (2011)

이전 03화《책의 자서전》안드레아 케르베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