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속, 간결한 문장과 더불어 성장하는 그들...
마을은 불 타오르고 소년 기와 소녀인 나는 산에 오른다. 소년 기가 앞서 달리고 소녀인 나는 그의 뒤를 따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저 멀리 마을 아래에서 불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나귀를 발견한다. 결국 나귀는 산에 오르지 못하고, 소녀는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한다. 기는 소녀의 손을 잡고, 마을의 저편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불이 붙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나와 기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은 그러나 곧이어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린다. 그 탄생의 지점이 애매하기만한 기가 어떻게 마을에 들어왔으며 또한 어떻게 노인의 집을 은근슬쩍 자신의 집으로 탈바꿈시켰는지를 짧게 언급하고, 여관 잡역부로 살아가는 현재의 기에게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러한 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기가 일하는 여관방 404호에서 홀로 숙식을 하며 살아가는 나, 그렇게 기의 뒤를 쫓는 나를 따르는 것이 소설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볼에 닿았다. 몸이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깨어난 후에도 한동안 침대에 머물렀다. 빗소리가 꼭 닭 튀기는 소리 같았다. 햇빛이 없었으므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사실 김유진의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명약관화, 간결한 문장들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간결한 문장들은 정상에서 굴러 내리는 눈덩이와도 같아서, 뒷 문장이 앞 문장을 품고, 지금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덮어 쓰면서 점점 덩치를 키운다. 그리고 그 명약관화 하던 문장은 어느 순간 그로테스크한 몽환의 분위기 혹은 농염하고 애매한 뉘앙스의 한 켠으로 조용히 물러 앉는 것이다.
“아버지의 발자국은 크고 깊었다. 나는 그 발자국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발끝을 스친 눈 벽의 가장자리가 무너졌다. 이미 발끝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발자국의 내부는 한없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순간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훈훈한 문장은 금세 냉정하고 차가와지기 일쑤이고, 어느 한 곳을 향한 따듯한 시선이 일정 시간 이상 유지되는 법은 없다. 리얼한 묘사 같은 것은 애당초 작가의 관심 밖인 듯 하니,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성별이나 연령대를 알아 차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저 막연하게 기와 나의 행동 양태들을 확인하면서, 혹은 나의 곁에서 나를 보호하는 후견인의 노릇을 하는 안과 나의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전자에서 후자로 흐르는 삶,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자족하는 삶, 안은 그런 삶을 꾸릴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소설은 아직 어른이라고 볼 수 없는 나와 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삶으로 넘어가기 전, 그렇지만 이쪽의 삶에서 저쪽의 삶을 건너다볼 수 있을 정도로 한참을 달려버린,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름답고 튼튼한 울타리를 쳐야 하는 시기에 도달한 나와 기의 세찬 뜀뛰기의 기록에 가까워 보인다. 더불어 작가 또한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그 뒤를 따르기만 하는 것으로 보여짐은 물론 살짝 안타깝다.
김유진 / 숨은 밤 / 문학동네 / 207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