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미칠 수 있겠니》

흔들리지 않는 그것, 사랑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으니...

by 우주에부는바람

섬은 닫힌 공간이다. 섬은 무한한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그렇게 자신을 옥죄는 스스로의 모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섬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순간 우리들은 그곳으로 스스럼없이 들어서지만, 그 문이 열렸다고 우리 모두가 스스럼없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섬이 가지는 태생적인 폐쇄성은 결국 그곳에서 발생한 우리들의 모든 기억을 그곳에 가두지만, 섬의 문이 다시 한 번 열릴 때 그 기억은 판도라 상자 속 마지막 단어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소설은 섬에서 벌어진 칠년 전의 살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진과 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던 남녀는 서로 사랑을 했지만 그때 섬과 섬 아닌 곳으로 나뉘어져 살고 있었다. 진과 진,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은 남자인 진은 유진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진과 진의 집이었다가 이제는 유진의 집이 된 그곳에서 진은 배가 부른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유진과 함께 살았던 당시에 집안 일을 돌보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 써번트였던 소녀는 지금 유진의 침대 위에서 부른 배를 부여잡은 채 진을 향하여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칠년의 시간이 흐른다. 진은 다시 섬을 찾았고, 그곳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야나를 만나게 된다. 섬의 여자들이 섬을 찾은 남자의 침대에서 발견되는 시간, 섬의 남자들은 섬을 찾은 여자들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그녀들을 탐색하고 그녀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그녀들이 떠나지 못하기를 혹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그렇게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세상의 어떤 여자도 자기가 가진 걸 전부 다 내놓지는 않는다는 거야. 자기가 가진 것의 구십 프로를 내놓는 여자도 나머지 십 프로만큼은 절대로 안 내놓지. 그러니까 사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십 프로가 뭐냐 이거야.”


그렇지만 이야나는 섬의 남자들과는 다르다. 자신의 친구 만으로부터 코치를 받아도 별반 소용이 없다. 그런 이야나는 자신의 택시에 태웠던 진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진은 자꾸 이야나의 택시에 오른다. 이야나에게 이끌려 섬의 무당이라고 할 수 있는 힐러를 찾아가고, 칠년 전과 현재의 경계를 허무는 시제가 없는 문장들로 대화를 나누고, 결국 함께 침대에 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섬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요동치는 느낌과 함께 지진이 일어나고 뒤이어 밀어닥친 해일은 섬을 초토화 시킨다. 폐허가 된 섬에서 진은 칠년 전 사라진 자신의 남편을 찾고, 이야나는 자신을 버린 여인 수니를 찾는다. 그렇지만 잔뜩 흔들린 섬에서 두 사람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 대신 칠년 전 그날 벌어진 살인 사건, 그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 참 예뻤어. 진이 속으로만 말했다. 참 예쁜 여자 아이였고, 그 남자 아이도 그랬어. 참 예쁜 남자 아이였어. 사랑이 모든 걸 얼마나 예쁘게 만드는지, 아무리 가혹한 상처가 남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햇살처럼 빛난다는 거……. 우리 모두는 그걸 알고 있지.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것뿐이겠지.”


결국 또 사랑으로 환원된 작가의 이야기가 조금은 밋밋해 보인다. 시간의 통로라도 거친 듯 단숨에 뛰어 넘은 칠년이라는 시간은 살짝 맞물린 자리가 어긋난 듯 삐걱거린다. 작가가 흔들리지 않는 그것이라고 말하는 사랑은 지진과 해일이 아니어도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뒤이기도 하다. 잔뜩 힘을 주어 말하지만, 그래서 더욱 몰입하기 힘들어져 버렸다고 말해야 할까. 그냥 이 정도로는 미칠 수 없겠지, 라고 말하고 말아야겠다.



김인숙 / 미칠 수 있겠니 / 한겨레출판 / 302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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