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미컬한 발레리나의 몸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검은 날개가 펼쳐질 때..
<블랙 스완>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매혹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이며 동시에 매우 영리하고 지적인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순수함의 상징인 백조와 백조를 나락으로 빠뜨려야 하는 음모를 가지고 있는 흑조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발레리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감독의 의도는 어떤 부분에서 매우 유효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분한 발레리나의 리드미컬한 몸은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보는 이들의 감각적인 렌즈를 타이트하게 조이도록 만든다. 그렇게 주인공은 우리들 시야에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게 집중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리드미컬한 몸에 갇힌 그녀들, 순수하게 예술에 집중하고자 하는 그녀와 욕망에 충실하며 도발하고자 하는 그녀가 보여주는 치열한 난타전을 향하여 우리들 시선이 두리번거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치열함은 주로 환각이 되어 나타나고, 예민한 백조는 이러한 환각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실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더불어 언제나 그 백조 속에서 날개를 펼치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흑조, 그러니까 방안 가득한 인형들과 그녀의 엄마를 통하여 통제되고 있던 흑조는 니나가 드디어 스완 퀸에 지명 되는 순간 또다시 움을 틔우고, 발레단의 단장과 호시탐탐 백조의 자리를 노리는 릴리의 계속되는 도발과 함께 드디어 검은 날개를 활짝 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편을 휘감고 있는 어두운 내용과는 별개로 발레라는 예술 행위가 주는 아름다움의 형식 또한 영화를 통하여 만개한다. 나탈리 포트만의 가녀린 몸이 유연하게 플로우를 날아 오르고, 그 손짓이 몸을 따르거나 이끄는 장면을 근거리에서 지켜 보노라면, 언젠가 한 번은 꼭 <백조의 호수>의 공연장을 찾아가리라 마음 먹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발레라는 예술 형식에 공헌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탈리 포트만이나 뱅상 카셀의 연기도 훌륭하다. 백조에서 흑조까지, 순수하고 가녀리게 스스로를 옥죄이고 있던 여인에서 핏발 선 눈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빨아 들이고 스러져가는 여인에 이르기까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탈리 포트만도, 숨겨져 있던 그녀의 어두운 본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내치거나 보듬어 안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뱅상 카셀도 좋지 아니한가.
여기에 <레퀴엠> 이후 다시 한 번 본격적으로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뒤섞는 연출력을 보여준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겹치니 영화 전체에 쫀득한 맛이 흐를 수밖에 없다. 연기와 연출이 절묘하게, 내용과 형식이 유연하게 서로에게 얼키고 설키니 간간히 등장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신음 소리는 차치하더라도, 어둡고도 섹시하기 그지 없는 영화 한 편이 오롯하게 완성된 것이다.
블랙 스완 (Black Swan) / 대런 아로느포스키 감독 / 나탈리 포트만, 뱅상 카셀, 밀라 쿠니스 출연 / 103분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