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여성에게 고하는 이별 이야기에 동참하다보면 나도 모르 게 어느
독특한 컨셉의 연작 소설집이라고 봐야겠다. 그 기획부터가 그렇다. 편지가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출판사는 ‘우편소설’이라는 것을 기획한다. “작가에게서 직접 편지를 받는다”라는 설정으로 모두 여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 중 다섯 개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독자에게 우송을 하고, 나머지 한 개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하나의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 이번 이사카 코타로 소설의 컨셉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출판사는 다자이 오사무의 열혈팬인 아버지를 둔 탓에 아무런 이유 없이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읽지 않는다는 고집을 부린 이사카 코타로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걸작 <굿바이>의 속편을 써달라는 부탁을 했고, “여러 여자와 사귀던 남자가 어떤 여성과 만나면서 과거 여성들에게 차례로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인 다자이 오사무의 원작의 내용을 차용한 이사카 코타로 식의 새로운 ‘굿바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네 사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주지. 네가 ‘그 버스’에 끌려가는 것과 끌려가서 어떻게 되는지, 그런 얘기는 하지 않을게. 뭐, 진부하고 어두운 얘기니까 안 하는 게 나을 거야. 그 대신, 그것 외에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화내지 말아야 해. 내가 여자한테 어떤 못된 짓을 하든, 네 험담을 하든 뭘 하든 불평하지 마.”
그러니까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의 원작에서 차용된 내용, 과거의 여성들에게 차례로 이별을 고한다는 설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물론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사카 코타로 식으로 잔뜩 변형되어 있으니, 여성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남성 호시노 가즈히코는 빚을 진 채 어딘가로 끌려가기 직전의 상황이고, 180센티미터의 키에 180킬로그램의 여성인 마유미에게 감시를 당하는 채로, 바로 그 거구의 말도 안 되는 캐릭터인 마유미와 결혼을 해야 해서 당신들과 헤어져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 다니는 상황이다.
그렇게 호시노 가즈히코는 제한시간 30분 동안 많은 딸기를 먹는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캐리어 우먼인 히로세 아카리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엉뚱하게도 어마어마한 양의 점보 라면에 도전을 하면서 옆자리 남성을 돕는가 하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자동차를 형사에게 빼앗긴 후 우연하게 만난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이혼녀 시모쓰키 리사코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동시에 마약 사범을 잡고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기도 한다.
만화 매니아이면서 동시에 로프 매나이이기도 한 기사라기 유미에게 이별을 고하고 난 다음에도 그 뒤를 쫓다가 강도들을 잡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고, 이비인후과의 옆 칸에 있다가 만나게 된 숫자에 집착하는 여성 간다 나미코에게 이별을 고한 다음에는 그녀의 암진단 결과를 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선배의 광고 제작 현장에 들렀다가 만나게 된 여배우 아리스 무쓰코에게 이별을 고한 다음에도 그녀의 촬영 현장에 동행을 했다가 엑스트라로 출연을 하는가하면 그녀의 현재와 자신의 과거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처럼 가볍기만 한 소설인데 놀라운 것은 한 편 한 편 읽어갈 때마다 조금씩 말도 안 되는 소설 속 캐릭터에 동화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이건 뭐 어영부영 말도 안 되는 바람둥이잖아, 라고 여기던 호시노 가즈히코가 품고 있는 따듯함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말도 안 되는 동화의 과정에 말도 안 되는 여성 캐릭터 마유미 또한 동참을 한다는 사실 또한 재미있다.
“... 아이들이 하는 축구를 본 적 있어? 그냥 놀면서 하는 축구. 시스템 같은 것 없이. 열 명과 열 명이 죄다 공에 달라붙어 쫓아다니는 축구. 공이 가는 대로 와, 하고 쫓아다니잖아... 네가 그것과 똑같아... 누군가 괜찮다 싶은 여자가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교제해. 와, 나, 그 애랑 사귄다! 하고 달려가는 아이처럼. 다른 여자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그저 그 생각 하나만으로 공을 쫓을 뿐이야. 시스템도, 전략도 없이.”
자신의 사전에서 인간적인 모든 단어들을 손수 지워 나가는 해괴한 캐릭터 마유미 또한 호시노 가즈히코와 동행하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감시 대상인 이 바람둥이 남성이 보여주는 모습에 알게 모르게 물들어간다. 그리하여 다섯 개의 이별 이야기의 뒤에 붙는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 마유미는 자신의 사전이 아닌 다른 이의 사전을 뒤지는 무리수를 두면서, 호시노 가즈히코를 싣고 떠나는 버스의 뒤를 쫓을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 / 민경욱 역 / 바이바이, 블랙버드 (Bye Bye Blackbird) / 랜덤하우스 / 391쪽 / 2011 (2010)